자산 매입 규모 매달 150억 달러씩 줄이기로
‘테이퍼링과 별개’ 제로금리 정책 당분간 유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에 경기부양 구원투수로 등장한 지 1년 8개월 만에 정책 전환에 나섰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연준은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를 마친 뒤 낸 성명에서 “지난해 12월 이후 연준의 목표를 향한 경제의 상당한 진전을 감안, 국채 100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 50억 달러씩을 감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준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등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 경기 회복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경제와 고용 사정 등이 개선됐다고 판단됨에 따라 두 가지 정책 도구 가운데 양적완화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테이퍼링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국채 800억 달러와 MBS 400억 달러 등 기존 월 1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에서 이달부터 올해 말까지 두 달간 월 150억 달러씩 채권 매입을 줄이기로 했다. 다음 달 이후에도 150억 달러 속도로 진행된다면 내년 6월 이후에는 테이퍼링이 종료된다.
다만 연준은 내년부터는 경제 전망에 따라 단계적으로 속도를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연준은 “매달 순자산 매입 감소와 관련해 이러한 속도가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경제 전망이 바뀌는 것에 따라 속도를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연준의 이날 결정으로 팬데믹 이후 두 배 이상 불어난 연준의 자산 규모 증가 속도는 한층 더뎌지게 될 전망이다. 연준의 자산 규모는 그간의 채권 매입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이전 대비 두 배가량 급증해 8조 달러를 돌파했다.
다만 연준은 팬데믹 대응을 위해 취했던 두 가지 금융완화 정책 가운데 양적완화는 거둬들이면서도 나머지 도구인 제로금리 정책은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최대 고용 등 별도의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FOMC 발표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테이퍼링이 금리 정책과 관련한 직접적 신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는) 금리 인상에 적합한 시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금리 인상은 경제 상황에 달린 것으로, 우리는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노동 시장의 한층 진전된 회복을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연준은 금리 인상의 전제 조건 중 하나로 최대고용을 꼽고 있는데, 파월 의장은 이에 대해 “아직 목표 달성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인플레이션 상황 등에 따라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행동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만일 대응이 필요할 때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과 적절한 정책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인플레이션과 관련해서는 내년까지 이어지겠지만, 다시 둔화할 것이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파월 의장은 “우리의 기본 예상은 공급 병목 현상과 부족이 내년까지 지속되고, 인플레이션율 상승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점”이라면서도 “하지만 유행병이 누그러지면 공급망 병목 현상은 완화되고, 일자리 증가율은 다시 상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은 오늘날 높아진 수준에서 감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준의 성명 역시 인플레이션에 대해 ‘일시적’이라는 표현을 유지했으며, 공급 제약의 완화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이번 발표가 ‘예상대로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CIBC이코노믹스의 캐서린 저지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예상대로 테이퍼링 착수를 발표했다. 발표된 축소 속도를 바탕으로 하면 테이퍼링은 내년 중반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내년 하반기 두 차례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에 길이 열리게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