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민관 협력의 혁신체계가 필요하다

입력 2021-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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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

경제성장, 특히 기술발전에서 정부의 일과 민간의 일은 구분돼야 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하게 들린다. 이런 상식은 종종 시장이 경제 혁신을 주도해야 하며, 정부는 공정한 심판자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보다 정부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또 다른 상식도 있는데, 이때도 정부는 민간이나 시장이 잘하지 못하는 시장실패에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서 경제에 적극 개입한 데 힘입어 고도성장을 이뤄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정부 역할을 제한하려는 입장은 개발도상국의 추격형 산업화에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지만, 선진국이 된 현재의 한국에서는 정부가 적극적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30년간 세계적으로 정부 역할을 제한하는 입장이 상식으로 굳어져서 이런 주장은 상당히 호소력 있다. 그래서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최소한 학계에서는 지배적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부는 민간보다 산업에 대해서 더 잘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미래 유망산업을 선별할 수 있으며, 관료가 성장 잠재력을 알 정도라면 민간이 알아서 투자할 텐데, 굳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가”라는 문제 제기이다. 그리고 선진국은 산업발전 초기 외에는 특정 산업을 육성한 사례가 없다면서, 정부는 기업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기초과학, 인력 양성, 기반시설 구축 등에 투자하여 시장실패를 시정하고, 제도 개선을 통해 ‘혁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할을 한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 입장은 상식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우선, 정부와 민간 중 어느 쪽이 우월한가를 따지는 관점은 한 사회의 집단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선정한 신성장동력은 단순히 관료의 독자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다. 미래를 전망하고 국가전략을 입안하는 과정은 학계, 관계, 정계, 재계, 여론 등의 끊임없는 교류와 논쟁, 갈등의 최종적 결과물이다. 그리고 집단지식을 탄생시키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임무는 국가에 우선적으로 주어져 있다.

둘째, 시장실패 보완이라는 관점에서는 정부가 기술의 보편적 향상을 위해 기초과학에 집중할 것을 제안하는데, 최근 기술발전에 대한 역사 연구는 정부 역할이 단순한 기초과학 지원을 뛰어넘을 때 괄목할 성과를 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미국이 기술적으로 가장 앞설 수 있었던 데에는 공공 부문이 특정 분야를 겨냥하는 임무지향적 연구개발을 통해서 기술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술의 상업화를 보장하는 역할까지 맡은 것이 큰 기여를 했다.

사실 시장실패의 개념이 혁신 과정에서 정부 역할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역사 연구에 따르면 민간자본은 자본집약적 분야나 첨단기술 개발과 시장성 측면에서 위험성이 높은 분야에는 투자를 기피해 왔고, 정부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가리지 않고 위험이 큰 연구에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이고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흔히 혁신의 모델로 실리콘밸리를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혁신을 위해서 ‘자유분방한 기업가와 비전 있는 자금주’가 필수조건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관점은 기술발전의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있다. 현대 경제를 대표하는 컴퓨터, 인터넷, 나노기술 등의 혁명을 야기하고 이끄는 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곳은 미국 연방정부였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을 시장실패의 보완이라는 협소한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공공 부문은 선도적인 분야를 발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고 이를 순조롭게 운용할 비전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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