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차장
본지를 포함해 한국기자협회에 등록된 전국의 신문과 방송사 소속 기자가 1만 명을 넘었습니다. 언론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입니다.
시작은 1964년입니다. 군사정권의 비민주적 악법(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저지하기 위한 구심체로 출발했습니다.
이후 반세기 넘는 역사의 대부분은, 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억압에 분연히 맞서 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 안에서 수많은 언론인이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1만 명이 넘는 협회 소속 기자들이 각자의 매체에서 밤잠을 줄여가며 진실을 좇고 사실을 전달 중입니다. 이들의 하루하루는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해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기자가 1만 명씩이나 돼?”라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당장 옆 나라만 따져도 사정이 크게 다릅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만 2000명의 기자가 있고, 심지어 중국 인민일보는 소속 기자가 1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인민일보 기자 규모가 대한민국 전체 기자와 맞먹는 셈이지요. 물론 기자의 규모가 언론의 영향력과 사회적 가치를 대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나라는 유독 스스로 ‘기자(記者)’라고 포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국가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고 발언과 주장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저 없이 ‘기자’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기자협회에 소속되지 못했어도 정기간행물 발간 매체로 등록된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이제 동영상 포털이 활성화되다 보니 얼굴을 내비치며 본인의 이름 뒤에 버젓이 ‘기자’ 또는 '편집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어느 유튜버는 한 차례 ‘위촉 기자’로 글을 쓴 이후, 위촉 기간이 종료됐음에도 수년째 자신을 기자로 포장하다가 들통이 났습니다.
기자협회 소속 기자는 1만 명인데, 자신을 ‘기자’라고 칭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의 기자는 수십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마저 나옵니다.
이런 행태는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여름, 모 지상파 방송에서 경력직 아나운서를 공개 채용했는데요. 3~5년 경력의 아나운서를 뽑는데 지원자가 1300명에 육박했습니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에 등록된 아나운서가 600여 명. 경력직 아나운서를 채용하는 데 이보다 2배 넘는 지원자가 몰린 것이지요.
케이블 방송을 중심으로 주식과 스포츠 채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등장하다 보니 수요가 증가한 것은 맞습니다. 케이블 채널처럼 정형화된 방송 역시 그나마 사정은 나은 편이지요.
최근에는 온라인 동영상 포털에도 아나운서가 자주 등장합니다. 심지어 중고차 판매 채널에서 차 소개에 나서는 이들조차 버젓이 아나운서를 칭하고 있지요.
아나운서가 아닌 사람이 아나운서를 내세우 듯, 기자가 아닌 사람이 기자 명함을 스스로 만들어 내미는 시대입니다.
기득권을 앞세워 이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거나 당위성을 폄훼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직업적 소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기자의 노고가 퇴색되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들은 세간의 인기보다 직업적 소명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리고 수많은 언론인이 힘겹게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일부 가짜 기자들이 편승해 '사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흠칫 놀랐다면, 당신이 바로 가짜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