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버터(Butter)’로 전 세계를 녹인 그룹 방탄소년단이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 어워즈’에 큰 숙제를 안겼다.
권위와 차별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동시에 불통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드러내온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을 2년 연속 그래미상 후보에 올리면서도, 본상 후보에서는 제외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서도 ‘보수적인’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의 ‘버터’를 퇴짜놓은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23일(현지시각) 공개한 ‘제64회 그래미 어워즈’ 최종 후보 명단에서 방탄소년단은 글로벌 히트곡 ‘버터’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국 대중음악 가수 최초로 ‘2021 그래미 어워즈’에서 ‘Dynamite’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데 이은 2년 연속 쾌거다.
‘버터’는 ‘마이 유니버스’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던 콜드 플레이 ‘하이어 파워’를 비롯해 토니 베넷·레이디 가가 ‘아이 겟 어 킥 아웃 오브 유’, 저스틴 비버·베니 블란코 ‘론리’, 도자 캣 ‘키스 미 모어’와 경쟁한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서 대상 격인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다. 또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도 5년 연속 트로피 를 거머쥐었다. 이번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수상하게 된다면 방탄소년단은 미국 3대 음악식 모두 석권하는 K팝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3월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다이너마이트’로 같은 부분에 노미네이트됐으나, 수상이 불발됐다. 당시 방탄소년단은 당시 방탄소년단 “후보에 오르니 수상 욕심도 생기고 기대된다”며 수상에 대한 포부를 밝혀왔다.
이에 방탄소년단의 이번 그래미에 대한 각오는 남다르다. 올해에는 수상 가능성 또한 더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 한해 방탄소년단의 활약상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발표한 ‘버터’는 미국 빌보드의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통산 10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또 세계적인 밴드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로도 핫 100에서 1위를 차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도 3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그래미상 후보에 2년 연속 올랐으나, 본상 후보 지명은 불발됐기 때문이다. 당초 음악계에서는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4대 본상인 ‘제너럴 필즈’ 후보에 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외신 또한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AP통신은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 소셜미디어와 음악 차트를 모두 석권한 몇몇 주요 싱글이 제외됐다”며 “더욱 놀라운 것은 BTS ‘버터’가 퇴짜를 맞았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 그룹 BTS의 ‘버터’는 올여름 메가 히트곡이지만 그래미는 단 1개 부문 후보에만 BTS를 올려놨다”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글로벌 팝 돌풍 BTS가 블록버스터급 한 해를 보냈음에도 1개 부문 후보에만 올랐다”며 “‘버터’가 빌보드 ‘핫 100’에서 10주 정상에 올랐지만,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 배제됐다”고 보도했다. 이 외에 dpa 통신, 일간 USA투데이도 방탄소년단의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 탈락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는 수년간 ‘보수성’ 논란에 휘말려왔다. 카녜이 웨스트, 비욘세, 드레이크 등 흑인 아티스트의 음악이 잇달아 수상에 실패하면서 백인이 아닌 인종에게 배타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래미란 ‘축음기’란 뜻의 ‘그라모폰(Gramophone)’에서 비롯된 말이다. 트로피 또한 축음기를 본 따 만들었다. 1959년에 시작돼 2021년까지 총 63회의 시상식을 개최했으며, 지금까지 수여된 트로피의 개수는 8000개에 육박한다.
그래미 어워즈의 후보는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 중 투표권이 있는 회원 1만1000여 명의 투표로 선정한다. 방탄소년단과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의장도 각각 투표 회원과 전문가 회원 자격으로 투표할 수 있다. 특히 대중성이나 상업적 성과는 물론 다른 시상식과 달리 음악성에 더 큰 중점을 두고 후보를 지명하고 수상자를 선정한다는 점에서 권위와 차별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음악가들이 수상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긴다.
2019년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후보 노미네이트 불발 당시에도 비난은 거셌다. 방탄소년단과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인연을 맺은 팝가수 할시는 노미네이트 불발 소식을 접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전 세계 움직임에서 매우 뒤처져 있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시대 변화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레코딩 아카데미는 회원의 인종, 성별, 장르 등을 다양화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비밀 위원회를 폐지하고 1만1000여 회원이 투표해 후보를 지명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진 못했다.
비록 올해의 본상 노미네이트에는 실패했으나 보수적인 색채로 비판을 받아온 그래미에서 2년 연속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타 부문 후보 발표자로 나섰다는 것 자체가 유의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미도 방탄소년단을 한국의 가수가 아닌, 팝 가수로 온전히 인정하고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유엔 총회 연설 등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도 움직일 가능성이 커졌다.
방탄소년단이 이번 시상식에서도 ‘버터’ 무대를 꾸밀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대중음악 분야에서 한국인 첫 수상이 실현될지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