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최소한의 등장으로 최대치의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했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 출연한 유아인은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초대 수장 정진수를 연기, 그의 말처럼 블랙홀처럼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총 6부작의 시리즈에서 1~3회만 등장했지만, 극을 이끌어가며 신념과 광기 사이를 오가는 연기로 표현해 극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3일 오전 화상으로 만난 유아인은 자신이 맡은 정진수 캐릭터에 대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종교 교주와는 조금 동떨어진, 반전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에서 충격적인 전사가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감독님과 대화를 하면서 구체화해나갔어요. 보통은 믿음을 강요하기 위해 강력한 에너지로 사람을 이끌지만, 진수 같은 경우에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사람을 끌어들이더라고요.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레퍼런스들을 참고하며 소스를 따왔죠.”
지난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시리즈다. 연상호 감독이 원작 동명 웹툰을 그리고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다.
특히 ‘지옥’은 지난달 19일 공개된 지 24시간 만에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오늘 전세계 톱10 TV프로그램(쇼)’ 1위에 등극,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 ‘오징어 게임’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받는다.
“계속 1위를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기억에 남는 반응으로‘세계 무대에 내놓으려면 유아인이 제격이지’라는 댓글을 보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죠. (OTT) 플랫폼을 통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작품이 세계에 공개되고 소개될 수 있어서 반가워요.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치열해지는 과정에서 좀 더 폭넓게 관객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배우로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입니다.”
영화 ‘베테랑’, ‘완득이’, ‘사도’, ‘살아있다’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밀회’ 등의 작품으로 필모그래피 다채롭게 채우며 30대 남자 배우 중 독보적 커리어를 쌓아온 유아인이다. 그는 이번 ‘지옥’을 통해서는 정진수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레벨 업’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도’ ‘베테랑’처럼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 한편으로는 저를 그런 프레임에 가두는, 선입견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저로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고 캐릭터였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레벨 업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유아인이 다른 차원에서 표현을 하고 있구나’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실제로도 20년 뒤 죽는다는 고지를 받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으냐’는 질문도 나왔다. 유아인은 “고지를 받지 않았지만, 실제로 20대를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20대 때는) 겉멋과 허세에 찌들어 30대 중반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정진수와는 달랐지만 나를 좀 더 과감하게 던지고, 도전하고, 실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거든요. 또 20대 때는 내일 죽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살았어요. 순간 발산되는 에너지, 힘은 뒤가 없을 것 같은 상태였죠. 정진수를 연기하면서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유아인은 ‘지옥’ 속 장면들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집단의 광기, 혐오, 폭력 등은 현실에서도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극 내용처럼)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맹신하고, 그걸 무기 삼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현상들 역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잖아요. 작품이 공개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6회를 다 본 척하는 리뷰나 유튜브에서 5분가량 본 정보를 맹신하며 주변에 떠드는 일들이 생각났죠.”
유아인은 크게 1막과 2막으로 나뉘는 ‘지옥’에서 1막의 끝, 즉 3회에서 사망하며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 시즌2에서 유아인의 재등장을 바라는 시청자들이 많다. 유아인은 “저야 돌아오면 좋죠”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적게 나오고 최대치의 효과를 내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올 게 왔다, 제대로 한 번 해보자’ 마음 먹었어요. 많은 분들이 아쉬워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저 역시 재등장을 가장 바라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에요. 살아날 것 같지 않나요?”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