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합병(M&A), 기업공개, 자금조달, 시설투자 등 주요 기업이 계획한 올해 사업 재편 전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 사태로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동의 자유가 추가 제한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등 돌발 변수가 늘어나면서 의사 결정 과정이 지연되면서다. 특히, 주요 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현금 지출을 최소화하는 보수적 경영 기조로 돌아서면서 내년 새로운 대규모 M&A나 설비 투자 등은 추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M&A 빅딜 지연 =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집계된 국내 M&A 시장 규모는 총 72조59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전체 규모인 57조2371억 원 대비 27% 성장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유동성에 저금리 기조로 시장에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M&A가 활발하게 이어져 온 영향이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 인상과 코로나 리스크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M&A 빅딜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이슈, 유동성 자금 회수, 금리 인상 등의 대내외 변수로 전략적 투자자(SI)들의 자금조달이 쉽지 않아진 탓이다.
몸값 7조~8조 원에 이르는 빅딜로 꼽히는 국내 자동차 공조 업계 1위인 한온시스템은 예비입찰을 진행한지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본입찰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통상 예비입찰 후 한두달 정도의 실사를 거쳐 본입찰이 진행되는데,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한온시스템의 매각 절차가 지연되는 이유는 코로나19 등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쉽지 않은 자금조달 탓으로 보인다. 여기에 실적부진에 따른 주가 하락도 부담이다. 한온시스템의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70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감소했다. 올해 최고 2만 원에 달했던 주가는 1만3000원 대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가 한온시스템의 무보증사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로 변경하면서 신용등급 전망도 불투명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M&A도 지연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6개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했다.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 등에서 승인을 받았지만,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에선 아직 심사가 진행중이다. 특히 EU는 코로나19 여파로 회의나 리서치가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심사를 미루고 있다.
◇IPO 대어들도 연기하거나 시장 움직임 촉각 =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시장에 자금이 줄어들면서 기업가치를 깐깐하게 산정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기업가치가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SM상선은 상장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기관투자자들의 수요예측서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한 탓이다. 국내 최대 국적 선사인 HMM의 주가가 최근 약세를 보이는 점도 SM상선의 상장 철회에 영향을 줬다.
럭셔리 핸드백 위탁생산 전문 기업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이 상장을 철회했다. 국내외 좋지 않은 증시 상황으로 제대로 된 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기업공개(IPO) 기대주로 꼽혔던 넷마블네오도 한국거래소에 심사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유통 시장 조정에 따른 투자 심리 악화, 발행시장 성수기에 따른 영향으로 연말 IPO 시장이 위축됐다”며 “투자자들이 보수적인 대응을 하면서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고 내다봤다.
내년 LG에너지솔루션, 현대엔지니어링, 원스토어, SSG닷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마켓컬리, 쏘카 등의 상장 추진도 예상되나, 코로나발 불확실성 여파에 따라 일정이 조율될 가능성도 있다.
◇시설투자ㆍ자금조달도 ‘빨간불’ = 내년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자금조달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 생산량 확대를 위해 시설 투자에 나섰지만, 장비 입고가 안 되면서 신규 라인 가동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반도체 공급부족 여파로 반도체 장비의 핵심부품인 PLC(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 등 반도체 칩을 못 구해 생산 차질이 빚어진 탓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캠퍼스 2단지 내 ‘A5’ 신공장 증설이 코로나19 여파로 작년 상반기 이후 중단된 상황이다.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도 비상이 걸렸다. 티웨이홀딩스는 차입금 상환을 위해 28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선다. 유증 청약에 참여해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인 신주인수권증서 거래를 3일부터 5거래일간 시작하는데, 흥행에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항공산업이 회복세를 보이다 오미크론 출현 악재를 만난 가운데, 티웨이홀딩스의 대주주인 예림당이 배정물량의 4분의 1만 소화하겠다고 밝히면서 미청약 물량이 대거 발생할 우려가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오일 쇼크, 변이 바이러스, 인플레이션, 부채 조정 등 다발성 쇼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안정성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정도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그러나 과거 일부 사례에서 보면 경제위기 이후 시장 조정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또 다른 경제위기가 연이어 등장했던 경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 경제위기에 이어서 예상치 못한 동인을 가진 후행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동유럽과 독일,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최고치다. 이동제한 강도를 높이거나 전면 락다운을 시행할 경우 이들 국가와 관련된 산업(자동차, 기계류, 스마트폰, 의류)의 병목현상 심화는 불가피해질 것”이라며 “브라질, 인디아 및 베트남 이외 동아시아 신흥시장국 상황은 아직 양호하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 우려가 병목현상으로 이어질 환경이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