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유입 급감하면서 신진국 노동력 부족 심화
인구 고령화 고질적 문제도 여전…단기적으로 해결 어려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고용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일자리 부족에 시달렸던 세계 고용시장은 현재 오히려 노동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제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적 노동력 이동 제한이라는 새로운 문제와 인구 고령화라는 고질적 문제가 겹치면서 노동력 부족이 장기적 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노동 참여율은 11월 기준으로 61.8%를 기록해 팬데믹이 시작하기 직전인 2020년 초보다 1.5%포인트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구수로 따지면 팬데믹 이후 400만 명 이상이 고용시장을 이탈한 셈이다.
노동참여율은 전체 노동 인력 풀에서 일하는 사람과 구직 중인 사람의 비율을 뜻한다. 물론 각국마다 사정은 다르다.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로 해외 노동력 유입이 급감해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은 고용이 빠르게 회복하며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높은 노동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호주와 일본 역시 노동 참여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상황은 이렇게 국가마다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글로벌 노동시장을 관통하는 몇 가지 공통된 근본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이민자 유입 감소와 기존 노동자들의 조기 퇴직 증가다. 인구 고령화라는 해묵은 문제가 코로나19 사태와 겹치면서 조기 퇴직자 급증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이동제한으로 인한 이민자 유입이 사실상 멈추면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더욱 악화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 팬데믹 기간 많은 인력이 직장을 떠났는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악화한 근로조건을 견디지 못한 고령의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일찍 은퇴하면서 노동력 감소가 심화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지난해 초 팬데믹 초기부터 올해 8월까지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조기 퇴직을 선택하지 않았을 인구가 약 2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민자 유입을 막은 정책적 결정이 노동자 부족 문제를 더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로존 노동자 유입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 제한 정책 영향으로 노동력 유입이 현저히 줄었다.
주요 국가들의 경기 부양책이 근로자들의 복직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규모 실업과 이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주는 부양책을 시행했다. 이는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붕괴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가족 부양 부담을 덜게 된 근로자들이 복귀 시점을 미룰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여기에 집값 급등으로 갑작스럽게 기존 자산의 가치가 올라가고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서 고령 노동자들의 조기 퇴직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열어줬다고 FT는 설명했다.
문제는 인력난이 공급망 병목 현상을 유발해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글로벌 경기회복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박 요소 중 하나로 노동력 부족을 지목하면서도 여전히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팬데믹이 통제되면 노동력 공급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도 최근 한 연설에서 “정부의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 직장에 복귀하지 않은 근로자들이 많았지만, 앞으로 여러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결국 노동력 부족 현상은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단기간 내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고, 가계의 재정적 부담이 커지기 시작하면 일부 근로자들이 복귀를 선택하겠지만 그 비율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근로자가 여전히 감염에 대한 우려와 함께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육아 부담으로 복직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