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가격 상승세 둔화...유가도 배럴당 70달러선
11월 생산자물가 상승률 사상 최고
주거비·임금 상승세 인플레 압박 지속
미국에서 공급망 병목 현상 완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요 항구에서 하역 대기 중인 선박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상점의 재고 수준도 개선됐다. 물가를 압박한 공급 측면이 다소 진정된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에 이어 생산자물가도 고공 행진하면서 물가 수준이 전반적으로 대폭 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항 혼잡 현상이 최근 완화됐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롱비치항은 LA항과 함께 미국 물동량의 40%를 담당하는 주요 관문이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롱비치항 인근 해역에서 하역 대기 중인 선박 수는 이날 기준 55척으로 집계됐다. 11월 중순 111척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항만 병목 현상은 물가 급등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왔다. 상품 수요는 급증한 반면 이를 처리할 일손이 부족해 항구에 컨테이너가 적체되면서 각종 비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와 ‘아마겟돈’의 합성어인 ‘컨테이너겟돈(Containergeddon)’이란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마이클 가펜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는 “항만의 적체 완화는 항공, 트럭, 철도 부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점 재고 상황도 나아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전자제품 소매업체 베스트바이 매장에는 수십 대의 TV가 쌓여 있었다. 지난달만 해도 선반이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매장 직원은 “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재고 부족 현상이 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망 병목 현상이 다소 해소된 것과 함께 일부 물가 급등 요인도 진정될 조짐이다. 11월 미국 중고차 가격 지수인 ‘맨하임인덱스’는 전월 대비 3.9% 올랐지만, 상승 폭은 10월(9.2%)보다 크게 둔화했다. 최근 원유 가격 하락도 향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 압력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11월 초 배럴당 84달러대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70달러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 개선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노동부는 11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9.6% 상승했다고 밝혔다. 10월(8.6%) 11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시장 예상치(9.2%)보다도 높았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도 전년 대비 7.7% 올랐다. 10월 상승률(6.8%)을 훌쩍 뛰어넘었다. 통상 PPI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만큼 향후 CPI 상승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11월 CPI는 전년 대비 6.8% 증가해 1982년 6월(7.1%) 이후 39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
특히 CPI에서 비중이 30%에 달하는 주거비가 계속 오름세다. 11월 집세는 3.8% 상승해 미 주택시장 위기였던 2007년 이후 가장 큰 폭 뛰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알렉산더 림은 “집세는 일단 오르면 내려가기 어렵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금 상승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변수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 조사 결과 11월 임금은 전년 대비 4.6% 올라 14년 만에 최대 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229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계획한 내년 평균 임금 인상률은 3.9%에 달했다. 가드 레바논 콘퍼런스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임금과 인플레이션의 상호 상승 작용이 수십 년래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