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소총이 필요한데 대포를 쏘고 있나?

입력 2021-12-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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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대 대통령 후보자가 압축됐다. 대통령 후보자가 조만간 ‘대통령 당선자’로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국민은 차기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무엇이고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차기 정부 정책을 추진할 공직자들은 조직개편에 신경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 후보자의 정부조직에 대한 인식도 궁금해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작은 정부’니 몇몇 ‘부처 기능 통폐합’은 단골 메뉴로 나온다. 그러나 구호뿐이었고 실효성 있게 추진되지 못했다. 작은 정부를 외치던 정부가 너무나 많은 위원회나 조직을 남발한 경우도 많다. 정부가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많은 조직이 유명무실해진다. 권한 없는 부서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다가 “아니면 말고” 식의 흐지부지된 정책도 있다. 정부 말만 믿고 따르는 국민만 골병이 드는 꼴이다.

부처마다 주장하는 개편 방안은 다양하다. 기후변화와 환경 에너지를 총괄하는 기후변화환경부도 필요하고, 미래와 우주, 과학과 기술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미래전략처도 필요하다. 코로나 등 질병에 대비하고 전 국민 힐링 시대를 맞아 농업, 해양, 산림, 식품, 보건을 총괄하는 치유산업부도 필요하다. 인공지능,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다뤄 인구구조변화에 대비하고 교육과 고용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부서도 필요하다. 그러한 주장이 틀린다거나 개편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당이나 조직의 이념에 좌우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중장기 정부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논의과정이나 절차도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개별 부처 차원의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 잘못된 정부 조직개편은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 후유증을 가져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 통일부, 외교부 등 정부조직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 농촌진흥청은 폐지돼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농진청 폐지에 반대하는 주장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기능 개편으로 전환했다. 농촌진흥청을 존속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폐지방침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잘 모른다. ‘당선자’, ‘당선자 비서실’, 또는 ‘청와대 비서실’을 거치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나 결과적으로 엄청난 후유증이 있었다. 유사한 실패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 등 이름을 듣고는 금방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는 부처도 많았다.

조직개편 반대자를 설득하고 협조를 이끌어 내는 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정부 출범 초기 황금 같은 시간을 조직개편이라는 외형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5년 임기의 한시적 정부이다. 잘못된 개편은 부처를 어렵게 만들고, 되돌려 놓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 차질 없이 추진돼도 제대로 자리 잡는 데 최소한 2년이 소요된다. 정부 조직개편의 두 가지 큰 원칙이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흔들거나 개편하지 말고 문제가 된 부처를 중심으로 작은 것부터 개편해야 한다. 권력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수차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제시하고 개편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천하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이 ‘감방살이’를 하는 것은 특별히 이상할 것도 아닌 것이 됐다. 권력 구조를 다루다가 아무것도 못 할 수 있다. ‘작은 정부’를 외쳤으나 당선된 후에는 ‘강력한 청와대’로 변해갔다. 당선자가 원하지 않아도 주변 세력이 그렇게 몰아간다. 정부조직은 권력구조 개편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나 너무 범위가 넓다. 자칫 실속이 없고 핵심을 놓칠 수 있다. 과거 정부의 조직개편 실패를 “소총을 쏘면 되는데 대포를 쏘다가 실패”한 경우라고 하기도 한다. 원칙을 정하고 개편 정도와 범위를 좁혀나가야 한다.

둘째, 정부 조직개편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부처 간 장벽’을 철폐하는 일이다. ‘38선은 철폐돼도 부처 간 장벽을 철폐하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창원 한성대학교 총장 등 많은 행정학자나 조직학자들도 부처 간 장벽 철폐를 강조한다. 현행 정부조직법을 보면 18부 4처 18청으로 되어 각 부처의 기능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러 부처 업무가 서로 얽혀 있고 시대 여건이 변하여 새로운 업무가 지속적으로 생겨난다. 대학교육, 평생교육, 노동시장,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등이 소관 부처는 다르나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최근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이 산업정책이 안보나 외교정책과도 연계돼 있다. 조직개편이나 장벽 철폐로 불이익을 받는 집단의 반발도 무마해야 한다. 공허한 탁상 위 조직개편 이론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고,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 사례의 무분별한 도입도 경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이다. 사람과 지역과 산업이 융복합하고 국내외적으로 얽혀 있다. 조직개편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개편하되 원칙을 지키고 합리적 논의를 하라는 것이다. 고도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지혜롭게 해야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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