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이미 3~4년 전부터 딸기는 수경재배가 토경재배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국내 보고가 있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토경-수경 논란이 있다. 2017년 말 미국 농무부가 ‘땅에서 자란 작물이어야만 유기농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기존의 방침을 깨고 수경재배 작물에도 유기농 인증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도시형 대규모 농업에 진출한 기업들은 반겼으나 유기농 업계는 ‘유기농업의 정신을 훼손하고, 유기농업마저 기업 위주 질서로 만들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유기농 농장과 연구자들은 ‘리얼 올가닉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새로운 인증체계를 시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먹거리를 시장에 생산·공급해 주는, 자본주의 경제에 충실한 역할을 하는 농업이면 충분한 것일까?
공기와 같이, 흙은 우리에게 무한하게 물질을 공급해 줄 것으로 생각해 왔다. 흙이 있어 인간은 농사를 짓고 살아왔고 연료와 자원으로 활용하며 번영을 이루었다. ‘어머니 대지’라는 표현처럼 내 생명을 길러 주고 한없이 포용해 줄 것 같은 어머니도 스스로 돌보실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결국 한 생명 존재로서 피폐해지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을 이제 뒤늦게 깨닫고 있다. 그 흙이 어떻게 만들어져 우리를 먹여살리고, 지구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우리를 성장시켰는지 알아가고 있다.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물리적 격변과 생명 활동으로 지금의 흙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5억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그 흙은 바다와 함께 지구의 탄소를 저장하고 머금어 대기의 탄소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는데, 지난 백수십 년간 우리가 흙 속의 탄소를 캐내고 헤집어 대기로 확산시켰으니 기후위기를 맞고 있다. 흙은 대기보다 3배나 많은 탄소를 포함하고 머금을 수 있는데, 파헤치고 화석연료에 연유한 비료 농약 등 자재들을 투입하는 산업화된 경작으로 대부분의 경작지 흙은 탄소를 절반 이상 잃었다. 이제 탄소중립을 위해 흙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흙은 바다와 함께 탄소를 저장ㆍ안정화할 유일한 지구 공간이며 바다는 그동안 확산된 탄소를 녹여 저장하는 완충 역할로 이미 포화상태이다.
그리고 농업은 토양의 탄소저장 능력을 활성화하면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인간 활동이다. 그렇다면 흙을 살리는 농업의 전환과 확장이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과업이다. 기후위기는 농업과 흙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의 곡창 사우스다코타주에서는 탄소를 흙에 묻는 방법으로 무경운(無耕耘)과 피복작물 재배에 주목하며 땅심 회복으로 연작이 가능해져 농업 생산성도 좋아졌다. 캘리포니아 ‘흙 살리기 운동’도 경운을 줄이고 피복작물을 재배하며 퇴비를 사용하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일본의 ‘에코팜’으로 인정받은 농가엔 10a(아르)당 8000엔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후 프랑스 농업계는 매년 토양 속 탄소를 0.4%씩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을 줄여나가는 4퍼밀 운동(4p1000 이니셔티브)을 추진하고, 유럽 20여 개 나라로 확산 중이다. 유기농업의 탄소중립 시대 버전이라 할 ‘탄소농업’ 전환에 나서야 한다. 탄소농업을 시도하려는 농가, 지역에 기술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인간의 문명이 흙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과거 문명의 흥망사가 아니라 이 시대의 위기를 맞으며 다시금 깨닫고 있다. 땅과 곡식에 의례를 올리지 않는 문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농사에는 하농은 풀을, 중농은 작물을, 상농은 흙을 가꾼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중농에 머물며 생산성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시대는 이제 상농을 요구하고 있다. 세상이 이를 요청하고 지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