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개인화 자산관리 추구하지만 PB·RA 수준에 그쳐
전문가 “서비스 진일보까지 시간 걸릴 것…소비자 책임 의식 강화 필요”
금융회사들의 데이터 활용 방안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통해 축적될 데이터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여야 하는데 그 방안이 마땅하지 않아서다.
마이데이터 사업이 지난 5일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해당 사업 허가를 받은 금융회사는 은행, 증권 등을 포함해 총 33개사다. 마이데이터 시행 첫날 다수의 금융회사가 마이데이터 서비스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새로운 트렌드로 꼽을 만한 서비스는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 금융회사들도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한 분위기다. A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이터는 적은 것보다 많은 게 낫다는 얘기가 있으나, 정작 그렇게 모은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진 개인 신용정보를 모아 이를 분석해 금융상품을 추천하거나 자산의 비중을 조언하는 등 초개인화된 맞춤형 자산 관리를 제공한다. 금융회사는 많게는 수천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빅테크와의 경쟁 속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기대감과 각오가 컸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보인 금융회사의 마이데이터 사업 모델은 기존 프라이빗뱅커(PB)를 통한 자산관리 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로봇+투자전문가 합성어ㆍRA)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마이데이터 사업의 결과는 애초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은행은 금융소비자들의 성향 다변화, 안정성을 추구하는 은행업 성격 등을 이유로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데이터 사업 방향성을 뚜렷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마이데이터를 통한 개인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의 관심사는 은행 상품이 아닌 높은 수익률을 실현할 수 있는 주식 시장, 가상자산 시장 등으로 쏠리고 있다. 예ㆍ적금, 펀드 등 은행들이 전통적으로 판매했던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1금융권으로 안전성을 중시하는 은행업 성격을 완전히 외면하고 수익률을 추구하는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A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은행이 상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전하는 일방향이었다면 지금은 데이터를 모은 후 재가공해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객으로서 가치 있는 정보와 서비스라고 판단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새로운 모델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를 활용한 금융회사들의 서비스가 진보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타 금융회사의 정보 제공과 소비자들의 책임 의식 강화 등 여러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남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고객이 사용하는 금융회사가 속한 금융그룹 이외에 다른 금융그룹의 상품을 같이 보여주고 추천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런 형태는 될 수 없다”라며 “현재는 금융그룹 산하의 상품을 추천하는 형태로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금융그룹 상품 제공이) 완전히 오픈된 형태가 되지 않으면 고객은 해당 서비스에 큰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란 고민을 금융사들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박사는 “마이데이터로 인해 디지털 소외계층이 더 취약해지지 않기 위해선 마이데이터(온라인)와 창구(오프라인)의 차별화가 없어야 한다”며 “걱정되는 건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의 판매규제로 규제가 약한 쪽으로 가는 게 금융사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도 자기 책임이 중요하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