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입국을 불허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조코비치는 호주 정부의 결정에 불복해 법정 다툼을 시작했으며, 조코비치의 모국 세르비아는 연일 호주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팬들은 그가 격리된 호텔 앞에서 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세르비아의 자존심을 건드린 이번 사건을 놓고 “조코비치는 코로나 정치의 희생양이다”, “스포츠계 동유럽 차별론” 등을 지적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세계 스포츠계를 달구고 있는 호주의 조코비치 입국 불허 쟁점을 짚어본다.
조코비치는 오는 17일 호주 멜버른에서 개막하는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지난 5일(현지시간) 밤 호주 멜버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하다가 결국 비자 발급이 거부, 호주 멜버른 외곽에 있는 파크호텔에 격리됐다.
호주는 입국자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조코비치는 백신을 맞지 않아 문제가 됐다. 조코비치는 호주 입국 전에 호주오픈이 열리는 빅토리아주 정부와 대회 조직위원회로부터 백신 접종 면제 허가를 받았으나, 연방 정부가 관리하는 호주 출입국 관리소는 서류 미비로 판단했다.
이번 호주오픈에는 선수와 관계자, 팬 모두 백신을 맞아야만 대회장에 입장할 수 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접종 면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백신을 맞지 않은 조코비치가 허가를 받은 데 대해선 특혜라는 주장도 있었다. 조코비치는 2020년에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조코비치 변호인단은 8일(현지시간) 조코비치가 지난해 12월 16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면제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성 판정을 받은 다음 날 모국인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조코비치는 작년 12월 17일 베오그라드 테니스협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다. 테니스협회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코비치가 그날 베오그라드의 노박 테니스 센터(Novak Tennis Centre)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2021년 최우수 선수에게 트로피와 상장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행사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인해 수상자만 출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협회 페이스북에는 조코비치가 협회 관계자 및 20여 명의 젊은 선수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도 올렸는데, 사진상에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조코비치는 12월 16일 세르비아 우편서비스가 조코비치의 테니스계에서의 위업을 기념해 만든 우표 발행 행사에도 참석했다. 조코비치 본인도 17일 인스타그램에 당시 사진을 올렸다.
AP통신은 “작년 12월 14일 조코비치가 농구 경기를 관람하며 선수들과 포옹했다. 이들 중 일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조코비치의 코로나19 양성 경로를 추정하기도 했다.
조코비치는 호주 멜버른 외곽에 있는 파크호텔에 격리된 지 사흘째인 8일 소셜미디어에 “전 세계인 여러분, 변함없는 도움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집니다. 너무 감사해요.”라며 근황을 알렸다. 전날에는 조코비치가 격리된 파크호텔 앞에 수많은 팬들이 모여 밤까지 춤을 추며 조코비치를 풀어주라고 외쳤다.
체코 여자 테니스 선수도 조코비치와 같은 이유로 호주 입국 비자가 취소되면서 동유럽 차별론이 부상하고 있다. 8일 호주 ABC에 따르면 호주오픈 웜업대회인 깁슬랜드 트로피에 이미 참가해 복식 경기를 치른 레나타 보라초바(체코)가 6일 호주 국경수비디에 끌려가 조코비치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 억류됐다.
ABC는 보라초바가 이미 입국한 사실에 대해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회복됐기 때문에 호주테니스협회로부터 백신 면제를 보장받고 12월에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호주 출입국관리소는 제출 미비를 이유로 비자를 취소했다. 멜버른 공항을 통해 호주에 입국하면서 비자가 취소된 조코비치와 달리 보라초바는 호주에 입국한 상태에서 비자가 취소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포츠계에 암묵적으로 있던 동유럽 차별론이 부상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7일 ‘왜 세계 1위 선수인데 평가가 양극단으로 갈리나’라는 기사에서 조코비치 소식을 다뤘다. BBC는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함께 ‘남자 테니스 빅3’ 중 1위인 조코비치 평가가 낮다는 점에 주목, 동유럽 차별론을 제기했다. 다만, 조코비치 개인의 일탈과 논란도 함께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급속한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총선에서 패배 위기에 몰린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분위기 반전을 꾀하기 위해 조코비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조코비치는 호주오픈이 낳은 최고의 스타로 지목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조코비치 모국인 세르비아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세르비아 정계는 연일 호주 정부 때리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르비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조코비치가 그의 의지와 달리 정치적 게임의 희생양이 되고 있으며 굴욕을 당하기 위해 호주로 유인됐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고, 세르비아 국회의장이자 전 총리인 이비차 다치치는 조코비치가 ‘정치적 괴롭힘’을 견디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조코비치와 통화하고 주 세르비아 호주 대사를 불러 격하게 항의했다.
세르비아 측은 조코비치가 머무는 호텔이 코로나19 격리시설로 사용되다 지금은 난민과 망명 신청자 등을 수용하는 구금시설 용도로 쓰이고 있다며 인권 침해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코비치는 호주에서의 방출 유예를 부여받았지만 17일 개막하는 호주오픈에 출전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조코비치는 법원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파크호텔에 격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