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을 활용한 환치기(무등록외국환업무)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치기에 가상자산 거래소가 활용되는데도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허점을 노린 업체들이 환치기를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물밑 작업 중이라 경고했다.
17일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내역에 따르면 2021년 가상자산을 이용한 환치기 적발 규모는 8238억 원에 달한다. 2020년 204억 원 대비 4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체 불법 외환거래 적발 규모는 1조3256억 원으로, 가상자산을 이용한 환치기가 약 62%를 차지했다.
통상 환치기는 해외에서 송금 의뢰인이 환치기 계좌 운영주에게 송금을 의뢰하며 시작된다.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매수하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 이동, 해당 가상자산을 매도한 뒤 자금 수취인에게 불법자금을 전달하는 식이다. 국내에서 해외로의 환치기 또한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가상자산이 환치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도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사실상 무방비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환치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연간 5만 달러, 건당 5000달러로 송금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의 출금 한도가 이를 훨씬 웃돌면서 하루에 수십억 원이 해외로 전송될 수 있다.
실제 업비트에서 2채널 인증을 거친 고객은 하루에 50억 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출금할 수 있다. 빗썸은 150BTC(17일 시세 기준 약 78억 원)이다. 2단계 인증을 거친 고객에 대해 코인원은 일일 500만 원까지, 코빗은 1000만 원까지 출금 가능하다. 거래소 간 일일 출금 가능액 각기 다르게 책정된 이유로는 해당 거래소의 거래량, 개인ㆍ기관 투자자 비중, 출금 수수료 등 비즈니스 모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해당 허점을 노린 보이스피싱 일당이 업비트를 통해 약 20억 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해외로 출금했다. 수차례에 걸쳐 원화를 입금한 후 비트코인을 구매, 해외로 전송하는 과정에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이 작동하지 않았다. 사건을 맡은 경찰 관계자는 해당 비트코인이 일부 중국인 명의로 전송, 출금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이 특금법의 적용을 받는 만큼 선뜻 손을 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지 않다”라며 “(외국환거래법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 중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관세청 또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제재 등 관리 업무는 관세청 소관이 아니”라고 갈음했다.
전문가들은 특금법의 허점을 노린 업체들이 물밑에서 작업 중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컨설팅 등을 다수 맡은 업계 전문가는 “현행 특금법상 결과적으로 거래소를 통해 어떤 불법적 시도가 있었다고 해도 의무 위반을 물을 규정이 없어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다”라며 “관련 사업 모델을 만들어 달라 종용하는 업체들이 연신 사무소를 찾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