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부국장 겸 산업부장
중기부는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과 관련해 2019년 2월부터 논의를 이어왔지만 3년 동안 결론을 내놓지 못한 채 끌고 왔다. 14일 중기부는 중고차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3월 심의위원회를 열어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중고차 업계의 피해를 고려해 현재 추진 중인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 진출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이번 조치에 대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눈치 보기 결정’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된 바 있다. 이후 중고차 업계가 다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꾸준히 건의했다. 하지만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생계형 적합업종 ‘부적합’ 권고를 내리면서 논란이 됐다. 21대 국회의원선거 등 정치권 이슈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중기부가 2020년 5월 심의 기한을 넘겼고 대선 때문에 지금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만일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이 맡았다면 지금 대기업의 중고차 진출이 활발히 이뤄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 이유는 소비자들이 다른 골목상권 침해와 달리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을 환영하기 때문이다. 중고차 매매 시장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허위 매물 판매나 강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례가 계속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때마다 중고차 업계는 자정 목소리를 냈지만 변한 게 거의 없다. 20년 넘게 중고차 허위 매물 판매나 강매가 계속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중고차 업계에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2019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신고된 상담 건수 중 중고차 중개·매매 관련은 1만8002건으로 피해 구제는 2.2%밖에 되지 않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기부와 정치권은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에 대해 그동안 대기업과 중고차 업계 간 상생 협의만을 중재하는 모양새만 나타냈다.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에 신차 판매권을 달라는 무리한 요구만 한 채 버티기에 나섰고 결국 지난해 협상은 결렬됐다. 이에 3년을 기다려 왔던 현대차는 올해부터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일시정지 권고 조치로 현대차는 다시 관련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는 이미 수입 자동차 회사들이 중고차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점에서 역차별에 대한 불만이 많다. 7일 미국 LA에서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정만기 회장과 마이크 홍 사우스베이 렉서스 대표 등 현지 중고차 업계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 홍 대표는 “글로벌 업체들의 경쟁 범위가 차량 생애 전 주기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된 완성차 업체는 시장에서 도태가 우려된다”며 완성차업체의 중고차 시장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도 “세계 자동차산업이 차량의 단순 판매에서 차량 생애 전주기 서비스 경쟁으로 진화하는 상황에서 한국만이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경우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은 단순히 완성차업체의 서비스 경쟁력만 높이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도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데다 안심하고 인증·보증된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진출을 환영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를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소비자 단체까지 현대차 중고차 진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
중기부는 대선이 끝나는 3월 심의위원회에서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한다. 6월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핑계로 또 미룬다면 중기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중기청에서 중기부로 승격됐을 때 국민을 위한 중기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던 점을 다시 상기하길 바란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중기부가 아니라 국민의 눈치를 보는 중기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