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의 저력이 또 통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전 세계 54개국 정상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좀비물 특유의 속도감, 화려한 액션을 학원물에 녹여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2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1위에 올라 닷새 연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징어 게임’(53일간 1위)과 ‘지옥’(11일간 1위)에 이어 넷플릭스 정상에 오른 세 번째 한국 드라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후 사흘만에 세계에서 1억 2479만 시간 재생됐다. ‘오징어 게임’이 같은 기간 6319만 시간, ‘지옥’은 4348만 시간으로 1위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초반 반응은 역대 한국 시리즈 중 가장 뜨겁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이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2009년 주동근 작가가 내놓은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 영화 ‘완벽한 타인’을 만들었고, 극본을 쓴 천성일 작가는 드라마 ‘추노’ ‘7급 공무원’ ‘루카:더 비기닝’, 영화 ‘해적’ 시리즈를 썼다. 배우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이유미 등이 출연하는데, 대부분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예들로 주연 배우들이 구성돼 있다.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K 좀비물’은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 영화 ‘#살아있다’와 ‘반도’ 등으로 진화해왔다. 이 계보를 잇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를 배경으로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과 생존을 위한 인간의 사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한국 좀비 특유의 빠른 움직임과 변화가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특히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 상황과 맞닿아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기존 좀비물의 공식에 학원물을 결합해 새로운 좀비물을 만들어냈다. 학교 폭력과 임대아파트에 사는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지금 우리 사회를 꼬집는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에 학교 폭력, 왕따, 입시 경쟁, 빈부격차, 디지털 성폭력 등 교내 사회 문제가 어우러지면서 그간의 좀비물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개를 만들어냈다는 평이다. 또 강력한 피지컬과 무기로 좀비를 소탕하던 기존의 좀비물과는 달리 평범하고 어린 10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좀비를 물리쳐나가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도서관, 음악실, 체육관 등 학교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학교 내 문제 뿐만 아니라 계층 문제, 기성세대의 무관심 등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도 놓치지 않는다. 이재규 감독은 “학교 폭력은 비단 학생과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회에도 집단이기주의가 있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면 학원물임에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만큼 수위가 높은 신체 훼손이나 폭력 묘사, 극 초반의 선정적인 장면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단순하고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는 속도감과 긴장감을 떨어뜨려 지루하다는 평이 있다. 총 12부작, 12시간의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해외 평가는 더 긍정적이다. 미국 평점 사이트 IMDb에서 7.7점을 기록했다. 작품의 참신함을 평가하는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평론가 지수 79%, 관객 지수는 82%를 기록했다. 공개 첫날에는 신선도 지수 100%였다.
해외 매체들도 ‘오징어게임’과 ‘지옥’을 잇는 성공작으로 평가했다. 미국 연예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는 “‘오징어게임’과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중심 배경을 활용해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아찔한 효과를 줬다”고 호평했다. 영국 가디언도 “한국 좀비물이 여러분을 놀라게 할 것”이라며 “이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한국 괴물 시리즈는 세계를 뒤흔드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가디언은 고등학교 배경을 매력 요소로 꼽으며 “10대들이 위험에 처하고, 끊임없는 죽음을 애도하고,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파악하면서 복도를 통해 안전한 길로 나아가도록 강요하는 데 차이점이 있다”면서 “도서관 책장 위에서 마주 보는 인물들을 그리거나, 복도와 강당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들이 특별함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선함을 주는 것은 배경이다.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매우 영리한 조치”라며 “한국은 이런 것들을 잘한다.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게임’의 성공을 반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누구든 ‘부산행’을 본 사람이라면 한국이 좀비 서사를 쓸 때 최고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