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오랜만에 고개를 들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역대급 무역적자 기록이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온다. 대규모 투매 속에서도 외인은 ‘개미’가 던진 LG화학·현대글로비스·금융주 등 주요 종목을 쓸어 담은 것으로 확인됐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1월 한달간 1조6678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해 11월 1조8981억 원, 12월 2조8412억 원어치를 순매수한 지 두달만에 매도세로 전환한 것이다.
최근 외인의 매도세는 공포스러울만큼 거셌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외인은 14일부터 28일까지 7거래일 연속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4조5981억 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들어 13일까지 사들인 2조9303억 원어치를 훌쩍 넘어 급격히 매도세로 전환했다.
반면 지난달 개인 투자자는 5조6473억 원어치 사들였다. 외인의 폭탄 투매 행렬에 코스피지수가 지난 28일 장중 2591.53까지 내려가 2600선이 깨졌으나 이를 개인이 떠받친 형국이다.
국내 증시 반등을 위해선 외인들의 신규 순유입이 절실하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망에 신흥시장 자금 이탈이 이어진 데 더해 러시아발 지정학적 리스크의 불씨는 여전하다. 여기에 지난달 무역수지가 48억9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폭의 적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첫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팔자’ 기조 속에서도 외인은 개인이 던진 종목을 쓸어담았다. 지난달 외인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을 보면 LG화학(1조1515억 원 순매수)이 1위로 꼽혔다. LG화학의 상장 주식 중 외인이 보유한 비율은 지난해 12월 30일 46.76%에서 1월 28일 49.11%로 오히려 높아졌다.
반면 지난달 개인과 기관은 LG화학을 각각 8080억, 3280억 원을 순매도했다. 특히 개인은 지난달 LG화학을 두번째로 많이 팔아치우면서 외인에게 물량 넘겼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전 ‘물적 분할’ 이슈로 나온 매물을 외인이 쓸어담은 모양새다. LG화학은 지난해 12월 30일 61만5000원에서 지난달 27일 61만 원으로 떨어졌으나 이날 오후 67만8000원으로 급등한 상태다.
외인은 현대글로비스도 6132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면서 상위 3번째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개인이 6639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3번째로 많이 판 것과 대비된다.
금융주도 대거 담았다. KB금융(4048억 원), 하나금융지주(2492억 원), 우리금융지주(1894억 원), 신한지주(1330억 원), 메리츠화재(1161억 원)으로 지난달 외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5개가 금융주로 이름을 올렸다. 금리인상 시계가 점차 빨라질 것으로 점쳐지면서 마진 증가가 금융주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 증시 반등에 국내 증시도 오랜만에 기지개를 펴고 있지만 외인 ‘이탈 공포’는 여전하다. 증권가는 최근 주요 경제 지표들의 성적표가 고르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특히 지난달 무역수지 적자는 외인의 수급에 영향을 미칠거란 분석이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수출입 동향은 글로벌 경기의 향방을 가늠케 할 선행지표인 동시에 무역수지를 통해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외인들의 시각도 짐작할 수 있다”며 “통산 1월은 계절적인 에너지 수입으로 적자가 발생할 수 있만 49억 달러 적자는 지난 30년을 돌아봐도 전례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SK증권에 따르면 무역수지가 악화될 수록 외국인 누적 순매수도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무역적자가 악재이긴 하나 공급난과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란 해석도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이 잠재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그러나 무역적자의 핵심 배경이 원유, 가스 등 에너지가격 급등인 만큼 교역과 수출이 견조한 상승세를 유지 중인 점을 디테일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