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수요를 바탕으로 국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ESG 금융이 확대되고 자료가 확충되면서 시장 성숙도도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SG 채권이란 기업이 ESG 달성 과정에서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4일 공문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국내 ESG 채권 시장에 대해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고 평가하며 “정보 공개, 발행 유인책 등 시장 환경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투자 저변이 확대되고 있으며 ESG 금융에 대한 제도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제도화는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택소노미)다. K-택소노미란 특정 기술 또는 산업활동이 탄소 중립을 위한 친환경에 포함되는지 분류하는 지침이다. 공 연구원은 “원자력 발전, LNG 발전 포함 여부 등 논란이 있으나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글로벌 표준이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SG 책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환경 요인 및 사회 요인 관련 정보를 포함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자율 공시도 ESG 제도화의 한 축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2025년 이후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또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의무는 자산 2조 원 이상인 상장사에 한했지만, 2026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
아직 특정 채권이 ESG 채권으로 인정받기 위해 충족해야 할 법률, 감독규정 등은 정립돼 있지 않다. 다만 한국거래소는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국제기후채권(CBI),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의 녹색 채권 벤치마크 지수 편입 기준 등 여러 민간 자율 원칙 중 하나를 선택해 해당 원칙에서 정하는 요건을 준수하는 경우 ESG 채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 발행사가 최초로 발행한 ESG 채권은 2013년 수출입은행의 녹색 채권 KP다. 이후 2018년 KDB산업은행이 처음으로 원화 녹색 채권을 발행했다. 공 연구원은 2019년 11월 국민연금이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의결하면서 국내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민연금기금 기금운용 원칙에 ‘지속가능성’을 추가해 주식 부문 자산 운용에서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체 채권 발행잔액(2269조 원) 중 ESG 채권 발행 잔액(169조 원)은 7.4%다. ESG 채권 발행 규모는 2018년 1조3000억 원 규모였지만 2019년 29조 원, 2020년 63조 원 등으로 성장했다.
공 연구원은 “ESG 채권은 2020년까지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중심으로 한 공사공단채 위주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MBS 잔액에서 ESG로 분류된 채권 비중은 63.9%로, 다른 채권들(10% 내외)보다 높은 편이다. 공 연구원은 “2018~2021년 전체 ESG 채권 발행량 중 MBS 발행량 비중이 56.9%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공 연구원은 국내 ESG 투자가 국민연금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국민연금 책임투자 규모 추이를 살펴보면 2018년 26조7000억 원에서 2019년 32조2000억 원, 2020년 101조4000억 원으로 늘었다. 그는 “국민연금은 직접 운용과 위탁 운용을 막론하고 ESG 투자를 확대해나갈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선정에 ESG를 반영하겠다고 해 자산운용사들은 사회책임투자(SRI)채권 투자 실적을 쌓고자 ESG 태권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제도적 유인책의 부족과 금리 장점이 미미하다는 점은 ESG 채권 발행의 성장 장애물이다. SRI 채권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기존 채권 발행 절차에 사회적 책임투자채권 발행 체계 결정, 수립, 외부검토 업무를 통한 평가보고서 발급 등 추가되는 절차가 있다. 공 연구원은 “추가되는 절차 등을 고려하면 현재 제공되는 혜택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또 “관련된 발행 수수료를 감안하면 소폭의 발행 금리 절감이 실질적으로 자금 조달 금리 감소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공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ESG 투자가 강화되는 가운데 정부의 그린 뉴딜, 탄소 중립 달성 발표, ESG 관련 기준 마련 등 국내 지속가능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드라이브들은 계속되고 있다”며 ESG 채권 시장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