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박원장은 부푼 꿈을 안고 동네에 병원을 개원했다. 그러나 첫날 그의 생각과는 달리 환자는 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병원 개원으로 고정비용 지출은 계속 나가고, 아내의 카드 결제 문자도 쉴 새 없이 날아온다. 새로 채용된 간호사는 농땡이를 피울 궁리만 하며, 심지어 아들까지 취업시켜 영화 ‘기생충’처럼 병원의 돈을 갉아 먹는다. 박원장의 머리가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짠한 현실이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내과 박원장’은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장봉수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의사를 꿈꿨지만, 손님 없는 진료실에서 의술과 상술 사이를 고민하는 초보 개원의의 생존기를 그린다. 이서진은 돈 많은 명의가 꿈인 초보 내과 개원의이자 평범한 가장인 박 원장 역을 맡아 데뷔 23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개원 후 맞닥뜨린 박 원장의 현실은 짠하기만 하다. 비싼 외제차와 명품 시계, 쉴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기대했건만, 마침내 찾아온 환자는 발톱을 깎아달라고 요구하거나 진료비를 할인해달라고 한다.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맞춰보라는 황당한 요구에서부터 보험비 청구를 위해 진단서만 끊어달라는 환자까지.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는 ‘돌팔이 의사’라는 댓글이 달리며 한마디로 난감 그 자체다.
박 원장은 이웃 의사들에게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늘릴 수 있냐며 조언을 구한다. “비보험 진료를 늘려라”, “병원도 서비스업, 리액션이 생명이다”라는 훈수를 듣는다. 과거 전공의 시절 “돈을 쫓지 말고 환자를 쫓겠다”는 다짐을 떠올리지만,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박 원장이다.
웹툰을 그린 장봉수 작가는 실제 20여년 간 의사 경력을 지녀 매 에피소드마다 ‘하이퍼 리얼리즘’을 전한다. 7년 정도 개인 병원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겪은 일을 실감 나게 표현해내 독자들은 물론 의료계 종사자들까지 공감을 샀다.
기존 미디어에서는 의사의 화려하고 멋있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선망의 대상’,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과 박원장’에서 만큼은 가운을 입은 소상공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는 계기 마련해준다.
박원장 역의 배우 이서진도 개원의들의 애환에 공감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처음에 개업을 하면, 특히나 내과에는 환자가 많지 않으면 힘들다고 하더라. 연기를 해보면서 생각해보니 하루에 환자가 많지 않으면 굉장히 병원을 꾸려나가는 게 힘들겠더라”며 “비보험 진료를 늘리고, 진료 영역을 넓히는 게 이해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개원의들이 경영 악화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 의원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의 요양급여비가 각각 17.3%, 14.9% 감소했다.
특히 내원일수로 따지면 이비인후과는 30.0%, 소아청소년과는 24.5% 각각 감소했다. 이미 이비인후과의 요양급여비는 2020년에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19.1% 감소했다. 소아청소년과 역시 2020년에 전년 대비 35.3%나 줄었다. 지난해 폐업한 소아청소년과는 모두 154곳이었다.
또 의협신문이 2021년 5월 일주일간 진행한 설문조사(개원의 692명 참여)에 따르면 의료기관 10곳 중 9곳 이상은 매출 감소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설문에 참여한 의료기관 중 26.6%가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을 준비’하거나 ‘1∼2년 내 폐업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의사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내과 박원장’이다. 배우 이서진이 대머리 분장과 첫 코믹 연기 도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매회 코믹하게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의술과 상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박원장의 고뇌는 깊어져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비현실적 메디컬 드라마를 봐왔던 시청자들은 나와 다르지 않은 ‘내과 박원장’을 보고 더욱 공감하고 웃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