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측 “러시아 용병들이 먼저 휴전협정 위반”
미국 “러시아 일부 병력 철수는 거짓, 7000명 증원”
나토, 남동부·중부 전투단 배치 강화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우크라이나군이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스푸트니크는 공동통제조정위원회(JCCC)를 인용해 17일 오전 우크라이나군이 루간스크인민공화국 지역 4곳에 박격포와 수류탄 공격을 했다고 전했다.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관리는 “우크라이나군이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며 “민스크 협정에 따라 사용이 중단된 무기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루칸스크공화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세운 미승인국이다. 2014년 러시아가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들은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중앙 정부를 상대로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으나 국제사회는 두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과 우크라이나는 2015년 2월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노르망디 형식 정상 회담(러시아·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 4자 정상회담)’을 갖고 민스크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루간스크인민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휴전, 병력 철수, 경제 관계 재개, 돈바스 지역 자치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스푸트니크가 우크라이나의 루간스크공화국 공격을 보도했지만 정확한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뉴스는 스푸트니크통신과 리아노보스티통신 등 러시아 매체에서만 나왔을 뿐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보도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영 언론은 오히려 러시아 용병들이 루간스크공화국 인근에 지난 15일 박격포를 4차례 발사해 민스크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의 자작극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서방사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 구실을 만들기 위해 위장 전술을 벌일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러시아가 내부 혼란을 일으켜 자국민과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매체가 느닷없이 우크라이나의 루간스크공화국 박격포 공격을 보도하면서 서구권의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병력 철수 주장 자체에 의구심을 던졌다. 서구권이 우크라이나 침공 디데이로 지목한 16일에 러시아는 일부 병력과 탱크, 장갑차가 크림반도에서 철수했다며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서방사회가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역공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철수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기존 15만 명 규모에 7000명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회원국 국방부 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어떤 긴장 완화 조짐도 없다”며 “국경 인근 병력이 오히려 강화됐다”고 비난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의 안보 지형은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뉴노멀’이 됐다”며 유럽 내 전력 배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노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지칭하는 용어로 급부상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뜻하는 말로 통용된다.
구체적으로 유럽 남동부와 중부에 신규 나토 전투단을 배치, 억지력과 방어를 강화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나토가 동맹국 동부 지역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4개 전투단에 4000명 규모의 신규 병력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트 3국과 폴란드에 이미 있는 5000명 규모의 전투단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