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공약, 리더십과 같은 자질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미지다. 언론을 통해 정치인을 접하는 국민은 한 장의 사진, 짧은 영상과 상황 등으로 정치인을 판단한다.
이 때문에 정치인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종종한다. 평소 약점으로 지목되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연설, 유세 현장 등에서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한방에 이미지를 뒤집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흑역사’로 기록되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다. 윤 후보는 지난 17일 유세 현장에서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하는 동작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날 찾은 현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정치적 ‘홈그라운드’인 경기도와 성남 등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윤 후보는 이날 현장 연설에서 이 후보의 여러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장동 게이트라는 것 때문에 우리 시민들께서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다”라며 “정치에 발 들여보지 않은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이 자체가 바로 집권 민주당의 파산 선고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적극적으로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여당의 약점으로 꼽히는 부동산, 일자리 문제 등을 공략했다. 전체적으로 강한 비판과 ‘어퍼컷’을 연계시키며 ‘여당에 맞서는 강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지 정치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17대 대선에 후보로 나서며 만든 홍보 영상에서 서민 음식 이미지가 있는 국밥을 자연스럽고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기호 2번 이명박이 해내겠습니다’와 같은 내레이션도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약속과 달리 경제 성장에 있어서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이 전 대통령은 후보 당시 ‘임기 내 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약속했다.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장률(평균 4.3%)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실제 성장률은 평균 3.2%에 그쳤다.
퇴임 후 그의 모습도 ‘서민’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DAS)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번 3ㆍ1절 사면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청와대에서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서울시장 자리에 복귀한 오세훈 시장은 34대 서울시장을 맡던 2011년 당시 무릎을 꿇는 모습까지 보이며 시민들의 투표를 독려한 적이 있다. 당시 오 시장은 2010년 통과된 무상급식 조례안으로 2011년 서울시 예산에 무상급식 예산 695억 원이 신설된 대신, 서해 뱃길 등 서울시 주요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된 데에 반발해 무상급식 실시 여부를 두고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당시 주민투표율이 3분의 1(33.3%)을 넘지 못하는 경우 투표가 무산되기 때문에, 오 시장은 자신의 서울시장 자리를 걸고 무릎까지 꿇으며 투표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투표 당일 오전 10시 이후로 투표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최종 투표율은 25.7%에 그쳤다. 이로 인해 오 시장은 스스로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단순히 시장직을 내놓은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투표의 여파로 당시 한나라당은 중요 지자체장 자리를 반대당인 민주당의 박원순 전 시장에게 내주게 됐다. 또한 홍준표 지도부가 총사퇴하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거듭나는 등 직·간접적으로 18대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시장직을 걸고 투표한 것이 오 시장의 독단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보수층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정미 헌재소장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한국 정치역사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소장은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이던 2017년 3월 10일 당시 헤어롤 2개를 뒷머리에 달고 출근했다. 언론을 포함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선고일에 헤어롤을 달고 나온 모습에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동그란 헤어롤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모습에 “탄핵 ‘인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는 “숫자 8이기 때문에 재판관 8명 전원의 탄핵 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와 같은 해석이 쏟아졌다. 해석이 맞았을까, 당시 이 소장은 재판관 8명의 찬성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주문을 낭독했다.
한편 지난해 말 신년 사면으로 풀려난 박 전 대통령은 달성군의 한 전원주택을 퇴원 후 거처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사저 예정지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이 연일 이어지며 경찰은 인근 안전 관리에 나서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9대 대선 후보 시절 조곤조곤한 말투로 ‘유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당시 안 후보는 당내 경선 합동 연설에서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유약한 이미지 대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지지를 호소한 것이다. 안 후보는 “문재인을 이길 승부사 누굽니까! 문재인을 이길 개혁가 누굽니까! 문재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후보 누굽니까!”라고 외쳤다.
그러나 너무 과감한 이미지 변신이었을까, 안 대표의 ‘누굽니까’는 이후 다양한 패러디에 쓰였다. 개그맨 안윤상씨는 이 성대모사를 통해 ‘성대모사 달인’의 입지를 또 한 번 굳히기도 했다. 안 대표는 경선 이듬해인 2018년 바른미래당 출범식에서 “오늘 이 순간, 대한민국 정치가 바뀝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누굽니까’를 따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