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 "국제법 위반" 강력 비판
정규군 투입이냐 전면전이냐 갈림길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미국의 식민지”라고 맹비난하며 DPR와 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내용의 칙령에 서명했다. 이후 해당 지역에 평화유지군 파견도 명령했다.
이번 조치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러시아가 또다시 무력으로 국경 변경을 시도하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나갈 무렵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강제 편입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을 통해 친러 정권을 붕괴시키고 들어선 친서방 정권의 행보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거친 영토 편입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점령이었다. 이때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자신들도 독립을 하겠다며 DPR와 LPR를 세웠다.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갈등을 벌여왔다.
서방사회는 푸틴 대통령이 이들 친러 분리주의 세력 장악 지역의 독립을 승인한 것을 두고 사실상의 병합이고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자칭 DPR와 LPR 독립 승인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명백한 민스크 평화협정 거부이자 외교적 해법에 대한 러시아의 약속과 상반되며,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DPR와 LPR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 및 무역, 금융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을 둘러싼 갈등 발생 이후 미국이 내린 사실상 첫 제재 조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러시아가 자행한 국제 협정 위반에 대해 추가적인 제재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며 22일 대러 제재 발표를 예고했다.
우크라이나 요청으로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는 러시아를 향한 규탄이 쏟아졌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러시아의 평화유지군 주장은 ‘허튼소리’”라며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침공을 위한 구실을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바바라 우드워드 유엔 주재 영국 대사도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며 강력 항의했다. 한편 중국은 “모든 관련 당사국이 자제하고 긴장을 조성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피해야 한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어떤 결정을 하든 우크라이나 국경선은 바뀌지 않는다”며 “러시아는 분리주의자들과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만든 민스크 평화협정의 플러그를 뽑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가 무력으로 영토 편입 수순에 나선만큼 이제 관건은 전쟁의 규모와 형식이다. 러시아가 친러 세력 점령 지역에 정규군을 투입할지 우크라이나 전면전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날 열린 러시아 정부 안보회의에서 친러 세력 점령 지역을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하고 서방사회가 제재에 착수하면서 양측 관계는 개선이 어려워졌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러시아가 독립 승인으로 서방사회에 등을 돌리는 길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신 중국 등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