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흔히 게임산업법 혹은 게임법이라 불리는 이 ‘진흥’ 목적의 법은 우리의 규제친화적 환경과 우리 국민들의 규제 DNA의 흥미로운 산물이다. 진흥은 진흥이되 국가가 후견주의적 관점에서 세운 틀 안에서의 진흥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게임산업의 진흥 외에 ‘건전한 게임문화 확립’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국가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적극적 규제를 통해 해당 산업의 진흥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하에 게임산업법은 “오락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이에 부수하여 여가선용, 학습 및 운동 효과 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작된 영상물” 등을 게임물로 폭넓게 정의하면서, 여기에 각종 인허가(진입규제), 선택적 셧다운제 등 과몰입·중독 예방조치, 사행성 규제, 내용규제(등급분류), 유통규제, 행정처분 및 형사처벌 등을 부과하고 있다. 전체 48개의 조문 중 진흥에 관한 것은 10여 개에 불과하며, 대부분 조문들이 규제적인 것들이다.
이와 같은 게임물의 정의는 가상융합기술이 활용된 실감 콘텐츠와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켜왔다. 종래 실무상 일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영상물, 즉 양방향성을 지닌 영상물은 오락적인 것으로 보고 게임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게임물 규제가 실감 콘텐츠 전반을 지배하는 현상이 우려되었고 지속적인 개선 논의가 있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이제 문제는 메타버스를 향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융합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가상공간이자 플랫폼이다. 메타버스에서는 이용자들 사이에 다양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며, 창작, 공연, 소통, 거래 등 인간의 여러 사회적 활동이 폭넓게 이루어진다. 당연히 유희적 요소도 있고, 즐거움도 공유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만으로 메타버스 자체가, 그리고 그 안에서 창작되고 공유되는 여러 디지털 기술의 산물들이 게임산업법상의 게임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과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감을 활용하는 가상융합기술과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호작용에 대해 국가주의적인 잣대를 함부로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어제까지 소통의 공간이었던 SNS가, 그리고 이용자들이 자유로이 공유하던 게시물들이 XR(확장현실) 기술을 활용하는 순간 갑자기 게임물이 된다는 것은 상식에도 반한다. 게다가 메타버스는 본질이 플랫폼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게임과 같은 특정 콘텐츠로 취급하는 것도 맞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게임산업법의 게임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과감하게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게임은 여전히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고,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한다는 오명도 벗지 못하고 있다. 게임 규제 전반을 개선할 필요는 있으나, 자칫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교착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단 시급한 것부터, 가능한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게임물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상호작용을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콘텐츠’ 정도로 축소 해석하면서 그 외의 경우에는 비(非)게임물로 취급하는 가이드라인, 이른바 ‘탈(脫)게임 가이드라인’과 같은 것을 마련하여 메타버스 산업을 게임 규제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시켜 줄 필요가 있다. 법률 개정 없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축소해석을 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식약처가 2015년에 제정한 가이드라인인 ‘의료기기와 개인용 건강관리(웰니스)제품 판단기준’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통해 의료기기법의 포괄적인 의료기기의 정의가 축소 해석되었고, 그 결과 각종 웨어러블 기기가 자유롭게 출시되어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하는 선순환을 가져왔다. 규제기관의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합리적이어야 한다.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동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과 시장을 국가가 어린아이 훈육하듯 해서는 안 되며, 특히 입법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를 함부로 그 틀에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뉴딜 2.0 초연결 신산업’의 핵심이라는 메타버스는 ‘탈게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걸쳐 규제의 ‘탈게임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