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사항ㆍ면책 법조항 모호…정부 혼란
지난달 2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된 후 한 달간의 성적표다. 한 달 주기로 평균을 내봤을 때 사흘에 한 번꼴로 근로자들은 세상을 떠났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이 사업주·경영책임자 ‘처벌’이 아닌 중대재해 ‘예방’에 초점을 맞춘 법이라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법 적용을 검토할 만한 산재는 8건이 발생했다. 법 시행 이틀 만인 29일 삼표산업의 채석장 매몰 사고(3명 사망)를 시작으로 △2월 8일 요진건설, 신축공사장 승강기 추락 사고(2명 사망) △2월 11일 여천NCC, 공장 폭발 사고(4명 사망, 4명 중경상) △2월 11일 한솔페이퍼텍, 차량 전복 사고(1명 사망) △2월 16일 현대건설, 고속도로 추락 사고(1명 사망) △2월 18일 두성산업, 독성 물질 중독 사고(16명 급성중독) △2월 19일 삼강에스앤씨, 조선소 추락 사고(1명 사망) △2월 21일 쌍용C&E, 공장 추락 사고(1명 사망)가 잇따르고 있다.
산재가 잇따르자 법 제정의 실효성이 제기된다. 고용부는 1년의 준비 기간에 ‘최고경영자 처벌’ 가능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법 시행 첫날 “중대재해법은 처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산재 예방보단 처벌에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산재를 예방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처벌을 받지 않을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법의 모호성이 있다. 중대재해법의 의무사항과 면책조건이 불명확해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구체적으로 법에서 명시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하다. ‘이에 준하여’의 의미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란 모호한 표현으로 경영책임자가 기업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중대재해법의 재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관계 법령’과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할 수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7곳이 ‘중대재해법 준수가 어렵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절반 가까운 기업이 ‘의무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아무리 안전 조항을 준비하고 예산을 마련했어도 산재는 발생했다. 안전 준수조차도 힘든 중소기업들은 자포자기인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법의 모호성으로 처벌 1호 기업도 결정하지 못했다. 중대재해법 전 과정이 딜레마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