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 "정치권이 갈등 실마리 풀어야" 강조
'평화의 소녀상'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서 반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정기 수요시위를 열었지만 보수성향 단체가 이곳을 먼저 선점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일부 보수단체는 위안부 역사가 거짓이라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 회(정의연 전신)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면서 시작했다. 2011년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 종로구에 건립된 뒤에는 수요일마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녀상 앞을 지켰다. 정기 수요시위가 1532번 열릴 만큼 명맥이 깊다.
평화롭던 시위는 정치 논리가 파고들면서 혼란에 빠졌다. 보수단체는 2020년 5월,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국회의원의 후원금 유용 의혹 이후 소녀상 앞에 집회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집회 신고는 30일(720시간) 전부터 할 수 있다. 보수단체 회원은 집회 신고를 받는 종로경찰서 대기장소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장소를 선점하고 있다.
보수단체가 장소를 선점하자 수요시위는 소녀상과 멀어졌다. 지금까지 소녀상 앞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수요시위는 옛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 소녀상에서 북동쪽으로 약 10m 떨어진 서머셋팰리스서울 앞 인도는 물론 연합뉴스 건물 앞과 옆 등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다. 보수단체가 이 장소도 집회 신고를 마친 까닭에 23일 제1532차 수요시위는 소녀상에서 약 70m 떨어진 길 건너편까지 밀려났다.
정의연은 장소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수요시위 발언에 나서 "수요시위의 정신은 이 자리에만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요시위를 통해 퍼져나갔고 그것이 가해자가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인권의 기준이 됐다. 힘들지만 이곳에서라도 수요시위를 계속해나가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까지 나왔다. 위안부사기청산연대는 "위안부 운동의 존재 이유인 소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정의연 위안부 운동 역시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조치도 거부하는 모양새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달 수요시위 방해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태도와 대응에 긴급구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반대 집회로 수요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 모욕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청산연대는 인권위 권고가 형평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송두환 인권위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권은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소녀상 앞을 두고 벌어진 '자리 쟁탈전'이 윤 의원 후원금 유용 의혹에서부터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정치권은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견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방만 벌이고 있다.
후원금 유용 의혹 당사자인 윤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향해 "아픈 역사를 딛고 새로운 희망을 열어 줄 사람"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곧장 "입에 담기도 민망하지만 여성의 신체를 칼로 훼손하면 어떻겠냐는 욕설을 한 분”이라고 맞받았다.
대선 후보들 입장도 불투명하다. 정의연은 23일 성명에서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20대 대선 후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우리의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