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권’ 쥔다고 능사 아냐
돌아온 좀비 ‘과학기술부총리’냐. 제 기능 못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냐. 경제부총리(기재부 장관), 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에 이어 과학기술부총리의 부활이 새 쟁점 화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제외한 여야 주요 대선 후보가 ‘과학기술부총리’ 부활에 찬성했다. 과학기술부총리는 과학기술부장관이 제3부총리를 겸하는 제도로,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어 2008년까지 유지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합치면서 폐지됐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과학기술부총리제 부활에 한목소리를 냈다. 과학기술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후보는 “과학기술 혁신 부총리제를 도입해 국가 과학기술 혁신 전략을 주도할 수 있도록 기획과 예산 권한을 대폭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과학기술 부총리를 신설해 컨트롤타워로 삼고, 청와대에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을 둬 과학기술 중심 국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과기정통부를 부총리로 승격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다만, 과거 시행 당시 3년 반 동안 단 두명(오명, 김우식)의 부총리를 배출하고 사라진 것은 물론, 당시 자체 예산권이 없어 실효성 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R&D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예산의 경우에도,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결국 관건은 예산 권한이다.
심 후보는 “기획재정부가 부처 위에 상원 노릇을 하면서 말하자면 재정권을 가지고 부처들을 컨트롤해왔다”면서 “과학기술부총리는 당연히 정부의 R&D 예산을 총괄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예산권을 준다고 능사가 아니란 의견이다. 과학기술부총리가 위임받은 예산권을 통해 R&D 예산을 통합 관리한다는 공약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해법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대부분 부, 처, 청이 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부처 이기주의가 만연해있는 까닭에 일원화된 예산 통합 관리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과학기술부총리 신설’ 공약에 대해 거버넌스 조율의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되지 않으면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기부총리가 부활하면 과기장관과 큰 차이점이 있을까”라며 “과기계를 잘 대우하겠다는 정무적 메시지일 뿐”이라고 평했다. 염 부의장은 “과기부총리가 과학기술 예산권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 역할도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가 수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윤 후보는 과학기술부총리제 대신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선 대통령 직속 기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차별점이 없으며, 이미 있는 조직을 내실화하는 게 낫다는 주문이다.
이외에도 이 후보는 과학기술 7대 공약으로 △미래 국가전략기술 확보로 기술주권 확립 △우주기술 자립 및 2030년 달 착륙 프로젝트 완성 등을 제시했다. 윤 후보는 정치와 과학의 분리를 강조했다. 그는 “현 정부는 정치를 과학기술의 영역까지 끌어들였다”며 “정치적 판단으로 졸속 추진한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는 ‘100만명 인력 양성’ 방침을 내놓았다. 그는 “현재 연구원 수가 민간과 공공을 합쳐서 50만”이라며 “100만명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심 후보는 △PBS(Project Based System) 폐지 및 출연연 연구비 70% 보장 △여성연구자·청년연구자 지원 강화 등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