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시장에 쏟아지는 QR인증용 태블릿·휴대폰…평소 대비 20~30% 거래글 급증
서울 강서구에서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김 모(52) 사장은 작년 12월 약 40만 원짜리 태블릿 PC를 구매했다. 정부가 특별방역대책 일환으로 방역패스를 학원·PC방·스터디카페 등 실내 다중이용시설에 확대 적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개월 만에 김 사장은 중고시장에 태블릿 PC를 10만 원에 처분했다. 지난 1일부터 전국에서 방역패스 시행이 중단되자 방역물품이었던 단말기가 짐으로 전락해서다. 김 사장은 “현재 저 같은 사장들이 많아 중고시장에 단말기 값이 싸게 매겨지다보니 30만 원이나 손해를 보고 팔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1일부터 전국에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시행을 중단하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들 매장에서 사용하던 QR코드 인증 단말기들이 중고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큰 돈을 들여 태블릿 PC와 중고 스마트폰을 구매했던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방역 지침으로 4개월 만에 이를 다시 헐값에 처분하는 상황에 놓였다.
2일 중고거래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방역패스 시행이 중단된 지난 1일 태블릿 및 중고 스마트폰 판매 게시글은 하루 평균 대비 약 20~30% 증가했다. 중고나라·번개장터의 단말기 중고 판매글 대다수가 판매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팔려나갔다.
태블릿을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한 중고업체에선 전날 단말기를 팔겠다는 문의가 2배 가량 늘었다. 중고매입업체 관계자는 “단말기를 팔겠다는 자영업자들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 1월 독서실·스터디카페·대형마트 등 위험도가 낮은 6종 시설의 방역패스를 해제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지난 1월 18일 기준 한 달 전후 대비 중고 태블릿 판매상품 등록 비율은 약 20.5% 상승했다.
방역패스가 전국적으로 의무화 된 건 작년 12월 6일이다. 수기로 출입명부를 작성하거나 안심콜로 방역을 지킨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방역패스를 위해 태블릿 및 중고 스마트폰을 사야 했다. 이에 국내 태블릿PC 판매량은 급증했다. 전자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태블릿PC 판매량은 전년 대비 21%가량 늘었다. 지난해 전체 판매량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판매 수치는 이후에도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월 방역패스에 따른 소기업·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방역물품지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QR코드 확인 단말기, 손세정제, 마스크 등 방역물품 구매 비용을 업체당 최대 10만 원 지급했다.
지원금을 받고 QR인증 단말기까지 구매했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4개월도 사용하지 못하고 이를 처분하게 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일 0시부터 식당·카페 등 11종의 시설, 감염취약시설, 50인 이상의 모임·집회·행사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전면적으로 중단했다. 이에 따라 다중이용시설이나 행사 입장 시에 QR코드를 인증하거나 음성확인서를 제시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방역패스가 중단되자 ‘환영’의 입장을 밝혔지만, 급변하는 정부 지침으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의미 없는 영업제한 위주의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방침을 소상공인들에게 언제까지 강요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며 “소독용품, 항균제품 등 방역용품 지원에 나서 소상공인들이 자율 방역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