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남의 일을 돕는 일의 마음

입력 2022-03-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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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현 퍼셉션 대표

최근 스타트업들과 함께 일하면서 대기업 프로젝트와는 다른 배움을 얻고 있다. 문제의 발견과 정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고민과 도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의 온도와 움직이는 속도가 다름을 느끼며 ‘나의 일’을 하는 것과 ‘남의 일을 돕는 역할’은 어떻게 다른지,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론칭 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브랜드 전략을 재검토하고 단단한 기준으로 유연한 실행이 가능하도록 진화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여러 조사와 워크숍을 거쳐 큰 전략 방향을 수렴하고 있을 때 클라이언트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다. 최종 의사결정과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은 대표의 몫이지만,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참여와 공감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컨설턴트들이 좀 더 강한 목소리로 이끌어 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어렵지만 중요한 이야기다.

이 팀은 구성원들의 기준이 너무 높고 험난한 시장을 이미 경험하고 있기 때문인지 강력한 브랜드가 될 역량이 분명한데도 걱정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컨설턴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문성을 내세워 강하게 리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내부 의견이 한 방향으로 모일 수 있도록 전후좌우에서 은근한 힘으로 미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하다. 전문가라고 하지만 늘 충분하고 완벽하게 검토하기 어렵고, 실제 구동이 불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으니 무턱대고 선봉장의 역할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브랜드 존재의 이유를 정의하고 방향성을 정할 때는 외부보다 내부 팀의 생각과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한데, 이때 컨설턴트는 내부 팀의 동기를 부여하고 관점을 확장시키며 전문가적 소견을 얹어 합리적 의견수렴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컨설턴트는 상황에 따라 코치, 퍼실리테이터, 카운셀러,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주치의나 나침반, 조명탄이 되기도 한다.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은 일의 맥락과 팀의 역량 및 업무 방식을 고려해 그에 적합한 외부팀을 찾아야 하는데, 강력한 리드가 필요한지 함께 달릴 팀이 필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컨설턴트 또한 역할과 성과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일을 선택해야 한다.

멋진 프리젠테이션으로 저기로 가면 무지개만 가득할 것 같은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의 결과가 실제 얼마나 유효할 것인지 검증을 반복하고 내재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컨설턴트가 “이 브랜드는 이렇게 하면 됩니다. 저희만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아이는 이렇게 키우면 성공할 거예요”처럼 가끔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해 매번 신중을 기하려고 노력한다.

밀도 높은 과정을 거쳐 일을 마무리하면 늘 뿌듯함과 아쉬움이 남는데, 때때로 나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서운함과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컨설팅을 누가 일을 줘야만 하고 언제 어떤 기술로 대체될지 모르는 불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폐쇄적인 업무 방식만으로 변화와 혁신을 꾀하기 어려운 시대에 객관적인 입장으로 통찰력을 가지고 내부 팀을 도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외부의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전문가로서도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된 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연결자로서도 의미를 갖는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다.

존 고든의 ‘에너지 버스’에 등장하는 “나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는 중”이라며 즐겁게 일하던 나사(NASA)의 청소부,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재미있고 너무 좋아서 펜싱을 계속한다”는 주인공 나희도의 대사가 생각난다.

우리의 일에서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과연 나에게 적합한지 때때로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나의 일’과 ‘남을 돕는 일’ 모두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돕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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