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윤 당선인에 고의성 있다고 보기 어려워"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히며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 지하벙커 위치를 손으로 짚은 것이 보안사항을 유출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당선인은 앞서 20일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청사로 이전할 대통령 집무실 조감도를 손으로 짚으며 "여기는 지금 지하벙커가 있고, 여기도 지하벙커가 있고, 여기 통로가 다 연결되어 있어서 비상시에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부 시민은 윤 당선인 행동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렸고, 22일 오후 4시 기준 8만 명이 넘는 이들이 동의를 표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윤 당선인의 행동이 국가보안법이나 군사기밀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 1항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지령을 받은 자가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때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국가보안법은 한정된 사람만 알 수 있는 군사상 기밀, 적국·반국가단체에 비밀로 해야 할 사실을 알리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지령을 받은 자'인지, '목적수행을 위한 일'을 했는지다.
법조계에서는 윤 당선인 행동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천주현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의 목적 수행이 인정되려면 미필적인 인식과 의사, 용인 의사까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윤 당선인의 행동은 청사의 이전이 보안이나 경호에 안전하다는 점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며 "이를 고의라고 하기 어려워 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양욱 군사 평론가는 "모든 벙커는 지하에 있다"며 "손으로 가리키며 지하벙커가 있다고 해서 법 위반이라고 보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또한 "벙커 위치도 알려지지 않았다"며 "당선인이 제대로 지적했는지도 모르는데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군사기밀 보호법 제13조(업무상 군사기밀 누설) 1항은 업무상 군사기밀을 취급하는 사람이 업무상 알게 된 군사기밀을 타인에게 누설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김민기 법무법인 대웅 변호사는 "군 벙커의 위치 정보는 2급 군사 비밀이 맞다"며 "국방부 지하 B-2 벙커의 존재 자체가 일부 알려져 있다고 해도 적법 절차에 따라 기밀이 해제되지 않는 한 기밀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판례"라고 말했다.
다만 "윤 당선인은 조감도를 놓고 손짓으로만 대략 어디 벙커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이 법에서 처벌하는 '누설'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천 변호사 역시 "형법은 고의범과 과실범으로 나뉜다. 과실범은 결과예견의무와 회피의무를 모두 위반해야 성립한다. 군사기밀 보호법도 과실에 대해 처벌하지만 형법 이념에 의하면 고의범은 우선적으로, 과실범은 예외적으로 처벌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행동이 과실범 의무 모두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고의범은 물론 과실범 조건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