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모두 '쿼드'ㆍ'오커스' 등 '반中 동맹' 관여
정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 캐나다ㆍ뉴질랜드 주목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5일 전화통화는 그동안의 관례를 깬 ‘파격’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국가주석이 아직 취임하지 않은 차기 대통령과 ‘말을 섞는 것’ 자체를 금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 시절 당선됐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주한 중국 대사를 보내 축전을 전했을 뿐 취임식 전까지 일절 공식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후진타오에 이어 2013년 3월 취임한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축전을 보내고 이튿날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다음날부터 당선인이 아닌 대통령 신분이었다.
시 주석이 ‘금기’를 깨고 서둘러 윤 당선인과의 통화에 나선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누가 먼저 통화하자고 했는지도 불확실하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당선인 신분인 상태에서는 통화를 안 한다는 시 주석과의 통화가 이례적으로 이뤄진 배경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중국 측에서 말씀을 주실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혹시 저희가 중국 측과의 통화 성사에 미리 중국 측 입장을 해석해서 전해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추측건대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의 한중 관계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라고만 말했다.
통화 요청을 어느 쪽에서 먼저 했는지에 대해서도 "(시 주석이) 통화를 혹시 먼저 요청하셨다면 그것은 저희가 답해 드릴 사항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토씨 하나까지 돌 다리를 두드려야 할 만큼 조심스러운 정상외교 관련 사안인 만큼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중국이 이례적인 행보에 나선 배경을 짐작 해볼만한 정황들은 존재한다.
시 주석과의 통화가 성사되기에 앞서 윤 당선인과 전화로 대화를 나눈 정상들의 면면을 보면 명확한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25일까지 보름간 국가수반이 직접 전화통화에 나선 나라는 미국·일본·영국·호주·인도·베트남 등 6개국이다. 나머지 나라들은 축전이나 주한대사를 보내 축하인사를 전했다. 각 나라 사정이나 한국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선택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모시기에 열을 올리던 G7국가 중 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는 왜 전화 한통 없는지, 우리 정부가 각별히 공을 들여온 아세안(ASEAN)국가 중 왜 베트남만 연락이 왔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힌트는 윤 당선인과 소통에 나선 6개국과 중국의 관계에 숨어있다. 우선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비공식 안보회의인 ‘쿼드(Quad)’ 참여국이다. 2007년 가동된 쿼드는 중국이 인도양 진출 거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베 당시 일본 총리가 제안해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채 1년 도 안된 시점에 중국의 관계에 부담을 느낀 호주가 탈퇴하면서 사실상 와해됐다.
쿼드가 부활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다. 트럼프는 2017년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목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쿼드를 재가동했다. 당초 한국도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문재인 정부가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자 트럼프는 한국을 뺀 4개국으로 쿼드를 구성했고, 2021년 3월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영국 역시 반중연합체와 깊이 관련이 있다. 영국은 미국이 호주와 함께 2021년 9월 출범시킨 인도·태평양 지역 3자 안보 파트너십 ‘오커스(AUKUS)’의 멤버다. 오커스라는 이름은 호주(Australia)와 영국(UK), 미국(US)의 영문 이니셜을 따 지은 것이다. 오커스는 트럼프가 주도했던 쿼드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밀고 있는 반중연합체로, 중국 포위망을 한층 강화한다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베트남 정상과의 통화는 무슨 의미일까. 이 역시 쿼드에 눈을 돌리면 퍼즐 조각이 보인다. 베트남은 미-중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쿼드에 다른 국가들을 더 합류시키려는 미국이 구상중인 ‘쿼드 플러스’ 후보국이다. 미국은 과거 소련을 압박하기 위해 만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중국에 공동으로 맞서는 다자 안보기구로 쿼드를 확대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데, 그 대상국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거론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의미심장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 많은 나라 중 이틀에 한 번꼴로 국가수반이 윤 당선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6개국은 예외 없이 반중동맹 멤버이거나 후보국인 것이다.
전화통화가 이뤄진 순서도 예사롭지 않다. 3월10일 새벽 윤 당선인이 20대 대통령으로 확정되자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었다. 쿼드와 오커스를 동시에 이끌고 있는 바이든은 윤 당선인의 당선 수락 연설이 있은 지 불과 다섯 시간 만에 통화했다. 이어 이튿날 쿼드 멤버인 일본 기시다 총리와 통화 했고, 사흘 뒤인 14일 오커스 멤버인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 통화가 이뤄졌다. 다시 이틀 뒤인 16일에는 쿼드 멤버 겸 오커스 멤버인 호주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가, 17일에는 쿼드 멤버인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통화가 있었다. 이들 공식 회원국들의 통화가 모두 끝난 뒤 23일에는 쿼드 플러스 후보국인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통화가 이뤄졌다.
시진핑 주석과 윤 당선인의 통화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반중동맹 핵심 6개국 정상과의 통화가 모두 끝난 뒤에야 나왔다. 누가 먼저 통화를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당선인 신분과는 통화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원칙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시 주석에게 관례를 깨라는 외교결례성 요구를 했을지 짐작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결국 바이든 주도하에 반중동맹 국가들이 앞다퉈 ‘한국 모시기’에 나서는 기류가 형성되자 이를 지켜보던 중국측이 위기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선거과정에서 반중 정서를 언급해왔던 윤 당선인인만큼 취임 후 쿼드 플러스 참여 등으로 중국 포위망에 가세할 경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
시 주석과 윤 당선인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미 정상통화가 이뤄진 미국·영국·호주 외에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움직이느냐 여부다. 이들 5개국은 기밀정보 동맹체 ‘파이브아이즈(Five Eyes)’ 멤버로, 미국은 한국이 파이브아이즈에 참여할 것을 독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