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도 극과 극. 전혀 가까워질 가능성이 1%도 없어 보이는 다른 성격의 두 사람. 그런데 계속 마주친다. 익숙한 전개, 애증으로 시작해 애정으로 마무리되는 두 주인공의 흔한 클리셰.
그런데 뭔가 다르다?
그 뻔한 장면 속 두 사람이 흔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끌죠. 연상연하? 아니면 불륜? 아니면 과거 헤어진 가족? 아니요. 그 두 사람이 모두 남자라는 겁니다.
두 남자 주인공의 첫 만남부터 갈등,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 모습 과정이 그려진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데요. BL(Boys Love), 남남 동성 간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가 양지로 나왔습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타고 말이죠.
그간 BL장르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 다양한 종류로 등장하고, 소설로도 만화로도 접해 본 일이 있지만 그건 “봤어?”라는 말로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 나눌 소소한 주제였는데요.
그저 상상으로만, 혹은 ‘금손’들의 손을 타고 2D로 형상화된 멋진 남자들의 안타깝지만 그래도 궁금한 이야기. 한편으로는 성인물로 취급돼 애틋함보단 빨간딱지로 치부되는 일도 있었죠.
그런데 뭔가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웠던 이야기들이 채도 낮은 그림도, 보기에 답답한 화질도 아닌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로 등장한 겁니다. 지난달 16일 OTT서비스 왓챠에서 오픈한 8부작 드라마 ‘시맨틱 에러’ 이야기죠.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데요. 2018년 리디북스 BL 부문 대상을 받고 이후 웹툰, 오디오 드라마 등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번에 OTT 드라마까지 이슈로 떠오르며 BL계의 슈퍼작으로 떠올랐죠.
‘시맨틱 에러’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이자 과톱을 놓쳐 본 적 없는 ‘또라이’인 컴퓨터 공학과 최고의 아웃사이더 추상우(박재찬 분)와 모델 같은 몸매와 잘생긴 외모를 가진 전형적인 인싸이자 디자인과 스타인 장재영(박서함 분)이 각각 게임 개발자와 디자이너로 만나 펼치는 캠퍼스 로맨스물인데요.
그간 방송에서 만났던 BL물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최대한 거부감이 없게 그리고 촬영물이 무사히 방송을 탈 수 있게 적절한 수위 내에서 조절한 내용이었죠. 동성 간의 애정과 스킨십은 벽이나 틈새로 ‘페이드아웃’ 되며 시청자들의 상상으로 맡기는 전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거기다 ‘BL적 허용’이라는 알지 못할 틀 안에서 B급 정도의 퀄리티나 개연성 없는 내용이 당황하게 만드는 일도 있었는데요. ‘시맨틱 에러’는 달랐죠.
남녀가 아닌 남남일 뿐이지 두 주인공이 그 나잇대에 겪는 고민, 인간관계 등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고요. 두 사람의 로맨스 곳곳에서도 단순한 감정선이 아닌 시청자가 공감하는 친절한 감정선을 따라가 줬죠. 거기다 대사, 조명, OST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 ‘웰메이드 작품’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멋진 작품의 탄생,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는 건 당연한 순서겠죠? 2월 16일 첫 공개 즉시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했고요. 두 남자 주인공을 향한 관심도 뜨거워졌습니다. 아이돌 출신 주연 배우인 박서함과 박재찬이 표지를 장식한 영화 잡지(‘씨네21’ 1346호)는 이미 동이 났고요. 박재찬이 소속된 아이돌 그룹 DKZ(전 동키즈)의 과거 타이틀곡이 일부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하기도 했죠.
사실 연예계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팬덤을 자랑하는 아이돌 팬덤사이에서 BL은 너무도 친숙한 주제인데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 시절 ‘팬픽(팬+픽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빙의물까지 모두 남자 멤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BL물이죠.
“우리 오빠 사이에 여자는 있을 수 없어!”라는 확실하고도 명확한 주제 아래 펼쳐진 BL물은 팬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어찌 보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내용이 이해되고 수용된 것은 사랑하고 익숙한 대상이 그 주인공인 것도 크죠.
너그러워진 마음의 팬덤과 성소수자들, 또 다양한 장르를 만나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수요가 이 ‘시맨틱 에러’에서 만났는데요. 과거 TV 방송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국한된 분야가 실현된 가장 큰 이유는 OTT서비스 덕입니다. OTT는 다수보다 소수의 취향을 저격하는 콘셉트가 가능했는데요. 이런 경쟁 구도가 이어지면서 BL과 같은 장르물도 주요 시장에 진출하게 됐죠. ‘구독’하는 서비스가 이어져야 하다 보니 다양한 주제뿐 아니라 이용자를 지속해서 잡아두는 콘텐츠에 주목했고, 강력한 팬덤으로 두터워진 BL 장르로 이어졌습니다.
‘시맨틱 에러’의 성공에 힘입어 OTT업계는 후속 BL물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왓챠는 내달 중 BL 사극 웹툰 ‘춘정지란’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공개합니다. 투자배급사인 NEW는 BL 웹툰 ‘인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블루밍’을 31일 네이버 시리즈온과 IPTV 등을 통해 동시 오픈하는데요. 이 외에도 ‘따라바람’, ‘본아페티’, ‘트랙터는 사랑을 싣고’ 등 3편을 연달아 준비 중이죠.
새롭고 혹은 익숙하고,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궁금한 그 이야기.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친절하게 다가올 새로운 장르를 맞이할 준비 되셨나요? 언제나 어색한 시작. 그래도 그 시작은 항상 ‘기대’도 함께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