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람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시각장애인들이 등하교, 출퇴근, 병의원 및 관공서 방문, 장보기, 여가시설 및 관광지 방문 등을 위하여 거리를 보행할 때 겪는 다양한 경험들은 아마도 정안인(正眼人,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없이 일시적으로 거리를 다닐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여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시각장애인들의 지각과 인지 덕분에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편한 거리를 매일 다니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앞으로 모두가 모두를 위해 좀 더 편안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국내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16명의 성인 남녀 시각장애인의 심층 인터뷰한 최근 연구를 살펴보면 우리 모두가 얼마나 위험에 둔감한지를 알 수 있다. 우선 불법 주·정차 차량과 거리로 열려 있는 유리 출입문들과 입간판들이 거리 보행자들의 대표적인 위험물들이다. 때로는 가로수와 볼라드(bollard)도 보행자들에게 위험물이 될 수 있다. 이는 유모차를 끌어본 경험이 있거나 지팡이를 이용하는 노부모와 거리를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소음이 큰 공사 중인 도로 옆 인도와 차량 통행이 많은 간선도로 옆 인도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지하철과 철도역에 설치되어 있는 스크린도어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편의시설임은 이미 자명하다.
시각장애인의 지각능력에 맞추어 설치되어야 할 편의시설이 여전히 부족한 사실도 알 수 있다. 음향신호기, 유도블록, 스크린도어, 버스정류장의 버스정보시스템·음성안내시스템 등의 부족이 대표적이다. 한편으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도전과 과제도 있다. 소음이 적은 전기차의 증가에 대응하여 시각장애인의 다른 감각을 통해 안전한 보행을 이끄는 창의적 대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노출 등의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사물인터넷 기술의 지속적인 보완 연구와 개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사실은, 정안인들의 도덕적 냉담함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가중하는 요인도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시각장애인이 보행 방향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횡단보도 음향신호기와 유도블록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여전히 많음은 위에서도 언급하였다. 그런데 심지어 이미 설치된 음향신호기가 소음이라는 이유로 정안인들에 의해 훼손되고 유도블록 역시 그 규격이 임의 변경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장애인복지법(제25조 사회적 인식 개선 등)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제5조 사업주의 책임 등)을 통해 정안인들도 시각장애인이 안심하고 거리 보행을 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게 되어 있다. 학생, 공무원, 근로자, 그 밖의 일반 국민들은 시각장애인의 이동성과 편의시설 등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필요한 감수성과 공감 문화를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같은 방향으로 길을 다닐 때는 반걸음 간격을 두고 시각장애인이 붙잡을 수 있도록 팔꿈치를 뒤로 내밀고,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탑승장에서는 버스 번호나 지하철 탑승칸 번호를 알려주는 에티켓 등을 배울 수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포털이 도움이 된다.
자유롭고 편안한 거리 보행, 그리고 더 나아가 즐겁고 유쾌한 거리 보행은 모든 사람의 일과 삶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권리이다.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한 번이라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시간의 무게로 인해 세상을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는 미래를 앞두고 있다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편안하고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 데 동참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