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말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인수전이 연일 업계와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쌍용차는 2004년 상하이자동차, 2010년 인도 마힌드라에 매각됐다가 경영난에 빠져 11년 만인 지난해 4월부터 회생절차를 밟아왔다.
쌍용차 인수전에는 당초 11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으나 3곳만 본입찰에 참여했다. 이중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올 1월 본계약을 체결했으나 인수대금을 기한 내 납입하지 못해 3월 28일 계약 해제 통보를 받았다. 이후 쌍방울그룹이 이달 1일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누가 인수하든 쌍용차의 회생은 큰 과제다. 포스트 마힌드라 시대, 쌍용차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쌍용차는 한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 잔혹한 한국전쟁 여파로 분단되고 기반 시설도 황폐해진 1950년대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힘든 10년이었다. 쌍용차는 분단 직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를 모태로 출발했다. 당시는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회사는 버려진 미군 차량에서 오일드럼 엔진 등을 주워와 재활용해 버스와 상업용 차량을 만들었다.
1960년대 회사는 성장 기반을 닦아나간다. 1966년 현재 닛산 섀시를 사용하는 ‘HDH R-66’ 버스 중 하나가 브루나이에서 팔린 후 베트남으로 판로를 넓히면서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로는 처음으로 해외에 차량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1970년대까지 회사는 자동차 회사로서 입지를 굳히며 버스, 트랙터까지 만들면서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인 아메리칸모터스와 협력해 ‘지프(Jeep) 차량을 현지에서 조립, 승용차에도 발을 들였다. 이후 승용차에 대한 추가 투자가 이어졌고 지프에서 파생된 코란도 SUV의 개발과 일본 수출로 이어졌다.
그러나 모델 라인업에 과도하게 투자한 나머지 자금이 바닥나 1986년 시멘트 제조업체인 쌍용그룹에 인수됐고, 이후 생산된 모든 모델은 ‘쌍용’이란 브랜드로 판매됐다.
브랜드 변경과 함께 쌍용차는 글로벌 진출에 대한 야심을 키웠다. 문제는 내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판매 채널, 대리점 및 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1991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었다. 이게 모든 위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기술 파트너십에도 불구하고 쌍용차의 재무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연속적인 인수가 이루어졌다. 1998년 쌍용차는 대우 품에 안겼으나 대우가 재정 악화로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쌍용차도 긴 시간을 워크아웃 상태로 보냈다.
그러다가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에 팔렸다. 그럼에도 쌍용차는 영감을 주지 못하는 라인업으로 매출이 계속해서 정체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시작과 함께 SAIC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했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9년 노동자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파업이 일었고, SAIC는 마침내 쌍용차를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쌍용과 마힌드라는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이지만 둘 다 상용차, 4x4 및 SUV를 핵심 제품으로 생산한 역사를 공유한다. 마힌드라가 2011년 쌍용차를 5230억 원에 인수할 때 자신들의 기존 모델 포트폴리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경험과 전문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벤츠와의 파트너십과 달리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기술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 했고, 인도 경쟁사인 타타자동차가 영국 재규어랜드로버(JLR)를 인수할 때와 같은 성공을 복제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
타타는 독일 라이벌 대비 매출 증대를 위해 JLR에 투자했고, 마힌드라는 쌍용차를 인도와 해외에서 성공한 현대차의 라이벌로 탈바꿈시켜 유사체를 형성하려 한 것이다. 물론 소유권은 쌍용차의 플랫폼과 기술이 마힌드라 브랜드로 직접 판매되는 차세대 차량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접근 방식의 문제는 두 가지였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인도에서는 브랜드 평판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차가 인도에서 품질과 저렴한 프리미엄 자동차 제조업체로서의 명성을 꾸준히 쌓아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름인 반면, 쌍용차는 한국에서 인지도가 제한적이었고 해외에서는 거의 없었다.
이는 쌍용차에 대한 마힌드라의 소매 전략으로 인해 더욱 악화했다. 마힌드라는 쌍용차를 자체 대리점과 고급 판매 채널을 갖춘 고유한 브랜드로 분리하기보다는 마힌드라 하위 브랜드로 강등했고, ‘티볼리’ 같은 신규 모델은 ‘마힌드라 쌍용 티볼리’로 판매했다.
이에 인도 소비자들은 농업용 차량, 기본 SUV 및 3륜 자동인력거(tuk-tuk)로 잘 알려진 마힌드라가 “어떻게 갑자기 비싼 프리미엄 차량 라인업을 제공할 수 있느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인도에서 쌍용차가 쌍용차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마힌드라 제품(XUV300 등)과 함께 판매되면서 더 큰 혼란을 일으켰다. 또 마힌드라는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진지한 시도도 하지 않았고, 불완전한 제품 포트폴리오와 같은 다른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졌다.
2021년 말, 쌍용차는 전기버스 제조업체인 에디슨모터스가 이끄는 컨소시엄인 새 구매자를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컨소시엄이 기한인 2022년 3월 25일까지 인수대금을 완료하지 못하면서 거래는 무산됐다. 앞서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가 전기자동차 기술과 노하우를 통해 내연기관 SUV를 만드는 것에서 다양한 전기자동차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결국 쌍용차는 여전히 법정관리 상태로 남아 있다. 쌍용차는 다른 구매자를 찾겠다고 했지만, 대신 파산 선언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벤더와 공급업체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게 돼 잠재적으로 더 넓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공적 자금 투입으로 개입해 회사를 국유화할 수도 있다.
다만 전망이 어둡지 만은 않다. 작년 6월 쌍용차가 마지막 구원투수격으로 발표한 프로젝트명 ‘J100’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크다. 이 차량은 1993년 출시한 쌍용차 대표 모델 ‘무쏘’의 강인한 헤리티지를 이어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공개된 J100 렌더링을 보면 과거 쌍용차만의 정통 오프로더 SUV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다. 차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쌍용차는 지난 1월 ‘토레스’라는 상표권을 출원했다고 한다. J100은 현재 개발이 완료돼 6월말~7월초 출시를 앞두고 있다. 향후 전기차와 픽업 등 파생 모델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보다는 내년 출시가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2023년 2분기까지 또 다른 전기자동차인 ‘U100’을 개발할 계획이다. U100은 중국 BYD(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를 사용한다. 회사는 또 코드명 ‘KR10’이라는 견고한 외관의 SUV를 티저했다. 쌍용차는 이전에도 주행거리 500km 이상의 전기 무쏘 ute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에디슨모터스의 인수 실패를 고려할 때 이 모델이 생산될지는 미지수다.
프로젝트명 ‘X200’인 2세대 티볼리는 2023년이나 2024년에 출시될 가능성이 크다. XLV/에어는 대체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란도 최초의 전기차 ‘코란도 E-모션’의 페이스 리프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친환경차 인증을 받은 E-모션은 국내 첫 준중형 전기 SUV로 기존 신형 코란도와 신형 티볼리의 중형 버전이다. 최근 국내에서 캠핑 등의 용도로 중형 SUV가 각광을 받는 만큼 수요는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쌍용차 인수에 의욕을 보이는 에디슨모터스는 코란도 E-모션의 배터리 용량을 확장한 모델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기 모델 렉스턴 스포츠 전기차 모델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쌍용차가 그동안 노력해온 모든 것들이 결실을 맺는다면 올해부터 2025년까지는 매년 바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