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일단 정부조직개편 없이 ‘윤석열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한 배경은 6월 지방선거가 코 앞이라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물가상승 등 민생경제 상황이 엄중한 상황에서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자칫 국론분열로 이어져 국정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 축소 및 폐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이미 관련 부처와 이해관계가 있는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를 둘러싼 여성단체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윤석열 당선인이 최근 “여가부 폐지는 공약”이라고 발언하자, 일부 여성단체들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640여 개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라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일부 여성단체와 직접 간담회를 했다.
중소기업벤처부 해체 가능성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 중소기업청장을 지냈던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 좌담회에서 “지금같은 대전환 시대에는 중기부와 같은 매트리스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내 부처 기능 이전을 둘러싸고 생길 수 있는 잡음을 차단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통상 기능 이전을 놓고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날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추경호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조직개편 문제가 나오면 해당조직 구성원 관심사가 모두 (개편으로) 집중하는 만큼 국정 혼란을 줄이고자 조직개편에 시간을 둔다”고 설명했다.
국회통과라는 현실적인 장벽도 고려했다. 짧은 시간안에 여론을 설득하고 부처간 이해관계를 조정해 어렵게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든다해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조직개편안이 처리되려면 172석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민주당은 윤 당선인이 내세운 여가부 폐지 등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산 정쟁이 격화하면 새 정부 출범 첫 수개월을 장관 임명도 못한 국정공백 상태로 허비할수도 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7일 통의동 천막 기자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희가 정부조직법을 확정을 하더라도 거대야당이 있다”며 “(정부조직개편 결정권은) 국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걸 기다렸다 인선을 하게 되면 국정이 굉장히 공백이 생기니까, 그런 것을 방지 위해 현 조직법 체계 내에서 인선을 한다”고 말했다.
민생이 우선이라는 대의명분도 정부조직개편을 미루게된 한 요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작년 3월보다 4.1% 올라, 10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 피해구제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 등 경제상황이 엄중한 시기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국내외 경제문제, 외교ㆍ안보가 엄중한 상황임을 고려해 민생, 외교 등 당면한 국정 현안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는 조직개편 논란을 피하고 국정과제·민생대책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6월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윤 당선인은 여가부 폐지 등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안 위원장은 “(향후에) 차분하고 심도 있게 지금 시대 흐름에 맞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들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