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폐지론’이 따라붙었다. 그간 공수처가 내놓은 미흡한 성과와 정치적 편향성 등에 대한 논란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공수처 폐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수처 폐지는 국회 입법 사항인데, 공수처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이 협조해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차기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공수처와 불편한 공생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음 정권이 공수처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냐다. 진보 인사들을 겨냥한 수사기관으로 키운다는 전망과 함께 무기력한 ‘식물 기관’으로 좌초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공수처를 어떻게 활용할 지 관심사다. 어차피 없애지 못할 기관, 적극 활용해 전 정권 인사 수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건은 김진욱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 등 주요 인사들의 교체 여부다. 김 처장 임기는 3년으로 보장된다. 김 처장이 임기 완주 의지를 밝힌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공수처를 적극 이용하기는 어렵다. 자연스레 김 처장의 자진 사퇴로 여론을 몰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혁진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는 “정권의 사퇴 압박은 직권남용에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라며 “지금의 공수처가 환골탈태하지 않는 이상 국민 여론은 자연스레 나빠질 것이고 결국 공수처 주요 인사들의 자진 사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로스쿨 교수는 “친정권 공수처장이 생기면 공수처에서 접수된 사건 수사를 안하며 ‘뭉개기’ 할 수 있다”며 “반대로 검찰에서 질질 끄는 것을 공수처에 넘겨서 수사하게끔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 폐지는 민주당 협조를 구할 수 없어 한계가 있지만, 공수처 예산과 인사는 다르다. 우선 공수처 예산을 다루는 국회가 예산권을 빌미로 공수처를 압박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공수처 폐지법이 민주당에 장악된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공수처 예산을 최소한도로 배정해 수사 기능을 정지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윤석열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고 여당인 국민의힘이 예산을 삭감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변호사는 “예산 삭감하는 국회가 예산을 볼모로 공수처를 압박할 수 있고 결국 공수처장과 차장은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예산을 쥐어짜면 민주당은 정부 예산을 그대로 승인하든지 예산을 깎아서 통과시키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공수처 인사를 쥐어짜 ‘식물 기관’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에는 부처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있는데 이들을 원래 부처로 복귀시키고 인력 충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수처를 괴롭힐 수 있다”고 예상했다.
여기서 지켜볼 점은 민주당 입장이다. 정 변호사는 “민주당 역시 공수처 덩치를 키워봤자 자신들을 위협할 칼이 하나 더 생기는 꼴”이라고 내다봤다.
새 정부에서 공수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공수처를 ‘반문재인’ 정서 형성을 위한 수단으로 남겨둘 가능성도 있다. 공수처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이는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 남는다. 반대로 공수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면 이는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즉, 차기 정부는 동력 확보를 위해 공수처의 실책을 강조하며 ‘무능 프레임’을 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정 변호사는 “공수처가 일을 잘 하면 윤석열 정부의 검사들을 제대로 견제할 것”이라며 “반면 공수처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해서 윤석열 정부가 타격을 입을 일은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차기 대통령이 검찰 출신인 상황에서 굳이 공수처를 활용할 이유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의 로스쿨 교수는 “차기 정부가 전 정권 인사를 수사하기 위해 굳이 공수처를 이용할 필요가 있나”라며 “검찰 출신 대통령을 중심으로 검찰 라인이 잘 갖춰진 만큼 믿음이 가는 검찰을 시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