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산인공)이 지난해 치러진 제58회 시험 출제과정에서 후순위 출제위원을 위촉한 가운데 고용노동부 감사에서 이를 숨기기 위해 서류를 조작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출제위원 자격까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산인공은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14일 산인공과 '공무원 특혜 의혹'을 제기한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세시연)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차 세무사 시험 세법학 1부 과목 문제 3, 4를 출제한 A 대학교 B 교수는 7순위 출제위원으로 밝혀졌다. 산인공은 세법학 1부에서 위촉순위 명부를 12순위까지 두고 출제위원을 선정하고 있다. 모두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에는 4순위, 7순위 출제위원이 위촉됐다.
7순위 출제위원인 B 교수는 세법학 1부 문제 4번의 물음 3 재채점을 일으킨 인물이다. 채점의 일관성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고용부는 재채점을 권고했다. 그는 물음 1, 2도 함께 채점했지만 감사 결과는 '문제없음'으로 결론 났다. 수험생들은 B 교수가 단답형에 가까운 문제 4번 물음 3번조차 채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물음 1, 2 채점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며 재채점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용부 감사에서도 후순위 출제위원 위촉을 지적했다. 고용부는 감사 결과에서 "출제위원을 선정할 때 자격담당자가 전산선정시스템에 따라 부여된 위촉 우선순위대로 선정하지 않는 등 출제위원 위촉규정을 미준수"했다고 꼬집었다. B 교수는 채점 첫날과 둘째 날 이후 채점 기준이 달랐는데 '순간적인 실수'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산인공이 고용부 감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관련 서류를 조작했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점이다. 세시연에 따르면 담당자는 "서류 조작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수험생의 질문에 "인정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우선순위에 따라 출제위원을 위촉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출제위원을 선정한 뒤 고용부가 감사에 돌입하자 은폐를 시도했다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세시연은 B 교수가 출제위원으로서 자격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세법학 1부 문제 3, 4번을 출제한 B 교수가 세법학이 아닌 재무회계 전공자라서다. 그는 국내 자격증 대신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제위원 자격 기준에는 ‘대학 조교수 이상 또는 대학 전임교원 이상으로서 당해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라고 적시돼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지만 산인공은 숨죽인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수험생 민원에 대한 답변도 바뀌면서 혼란만 증폭하고 있다.
세시연 관계자는 "감사 중에는 감사를 이유로, 지금은 감사가 끝났다는 이유로 관련 문의에 대해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며 "의도적인 업무 태만"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출제과정에서 인터넷 사용 유무에 관한 민원 대답도 달라지는 데다 회계학 1부 채점은 감사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세시연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채점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번과 같은 비정상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4점짜리 한 문항이 아니라 4번 문제 20점 전체에 대한 재채점이 이뤄져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