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이 2002년에 발표한 ‘풀꽃’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언어는 풀꽃처럼 소박하다. 꾸밈과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 그가 최근에 낸 산문집 ‘봄이다, 살아보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산문집은 마냥 봄이라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저마다의 이유로 일상이 무너진 이들을 위무하는 책에 가깝다. 책 속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의 어깨를 도닥이는 나 시인의 격려와 응원이 있다.
1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 시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요즘 풀꽃문학관에 꿀벌이 안 찾아와 걱정이다. 생태계 교란 때문에 그렇다”며 “산사나무 밑에서 붕붕거리는 꿀벌 소리를 좀 들어보는 게 올해 봄의 내 소원”이라고 말했다.
“내가 곧 팔십인데, 인생을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칠십 초반만 해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팔십에 가까워지니 이제야 내려놓을 수 있겠더라. 그게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내 인생이 빛이 바랜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이번 책에는 그런 내 쓸쓸한 마음이 담겨 있다.”
나 시인은 이미 여러 권의 산문집을 낸 수필가이기도 하다. 이번 산문집의 특징으로 그는 ‘내려놓음’을 꼽았다. 그는 “어떤 목적의식이나 방향을 갖고 쓰지 않았다.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고 쓴 글들이 모인 것이 이번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서정시를 주로 썼다. 그래서 일부 문학평론가들은 나 시인의 시를 두고 “현실 감각이 없다”, “사회성이 없다”, “시대정신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나 시인은 “거대담론을 논하는 시대는 끝났다. 내가 강연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탈이념’이다.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자신의 감동과 정서를 주관적으로 읊은 운문이 주목받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어린이,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이 손해 보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이것은 요즘 시대의 정의이기도 하다. 진짜 정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돌보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연대’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나 시인은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시대가 됐지만, 그 말은 남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나를 돌보고 지키는 일”이라며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면 세상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