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첨단 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 보안.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기술로 꼽는 것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술의 주권, 즉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것은 공급망·통상(경제안보), 국가안보(외교국방), 신산업(미래혁신) 발전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이정동은 최근 책 ‘최초의 질문’에서 한국이 진정한 기술 선진국이 되려면 스스로 ‘게임의 룰’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모방이 아니라 창조, 추격이 아니라 개척을 통해 나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제 해결자 혹은 후발주자로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도전적으로 질문하고, 설계하며 산업의 선도자로서 게임의 규칙을 만들라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유념해야 할 단어는 바로 ‘질문’이다. 제목처럼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국가가 기술 선진국으로서의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 이정동은 “새로운 범용 기술의 등장은 기업 경영자가 가장 민감하게 주시해야 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최초의 질문이 등장하고, 접해 보지 못한 해법이 시도된다”며 “생소한 기업이 갑자기 산업의 리더가 되고, 천년만년 갈 것 같던 기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창조적 파괴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고 진단한다.
이어 “범용 기술의 등장은 산업구조의 급변과 일자리의 혼란을 가져오고 사회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이에 적응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범용 기술 등장 전후로 국가의 상대적 위상이 달라진다”며 “증기기관의 탄생과 함께 영국이 세계의 리더로 올라서고, 전기와 대량생산 체제라는 범용 기술을 선도한 미국이 그 자리를 대체한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영국과 미국은 미래를 위해 ‘질문’하는 국가였던 셈이다.
미래를 위해 질문하는 국가가 되려면 정부의 ‘기업가 정신’이 요구된다. 이정동에 따르면, 기술 선진국의 정부는 따분한 행정 처리 업무에서 벗어나 국가적인 문제에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 그는 “정부가 민간 영역에 직접 들어감으로써 민간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문제, 즉 공적인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공공과 민간의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 정부의 경우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연구 개발 투자금 중 40% 이상이 국방 부문으로, 30% 정도가 보건의료 부문으로 할당한다. 이러한 자금의 흐름은 정부가 민간 부문의 기술 개발보다는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것이 정부의 기업가 정신이 조달력을 바탕으로 기술 혁신에 기여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끝으로 저자는 ‘성장의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가 정립한 개념으로 과학적 합리주의, 개방적 태도, 도전적인 기업가에 대한 사회적 존경, 과학기술 인재를 중시하는 문화 등을 일컫는다.
그는 “성장의 문화는 대분기 시대 유럽에서 형성되었지만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류 전체가 집단적으로 발견한 성장 비법”이라며 “어느 국가라도 이런 문화와 제도가 있으면 최초의 질문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가운데 서로 경험을 나누면서 스케일업 할 수 있고, 결국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