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경제는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안보의 기반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경제와 안보는 둘이 아닌 하나로 국가의 근본이다. 우리나라가 70여 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를 딛고 지난 수십 년 경이로운 경제번영을 일궈 선진국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동맹으로 구축한 견고한 안보의 뒷받침이었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2년에도 대한민국은 기아(飢餓) 상태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1인당 국민소득 87달러로 당시 아시아에서 꽤 잘살았던 필리핀(220달러)의 절반 이하였지만,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성취하고 국민소득 3만5000달러로 그 나라의 10배 수준이다. 지난날의 얘기가 진부하고 식상해도,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반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윤 대통령의 지난 10일 취임 일성은 ‘자유’였다.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보편적으로 공유해야 할 자유의 확대가 번영과 풍요,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내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양극화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투적인 수사(修辭)나, 자신이 새 시대를 열겠다는 식의 구름 잡는 약속 같은 건 없었던 취임사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당연히, 또 반드시 수호해야 할 헌법정신과 나라의 정체성을 간명하게 재확인했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의 핵심가치다. 전문(前文)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규정한다. ‘자유’는 헌법 각 조항에서도 숱하게 반복돼 전체를 관통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다시 화두로 내건 것은, 그 원칙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정권은 2018년 개헌을 통해 헌법 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조문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이 맞닥뜨린 국정 환경은 엄중함을 넘어 최악이다. 경제와 안보가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민생을 위협하고, 성장의 핵심변수인 환율과 금리가 계속 뛰는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의 상황이다. 경기까지 뒷걸음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5년 내내 헛다리 짚은 부동산정책으로 집값은 서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엉터리 소득주도성장론에 세금일자리 정책, 기업 숨통을 죄는 끝없는 규제가 성장동력 상실과 일자리 참사를 낳았다. 지난 정권에서 넘겨받은 나랏빚도 1000조 원이다. 이전부터 구조화된 세계 최악의 저출산, 잠재성장률 추락 등도 나아진 게 전혀 없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북돋는 시장경제로 빠른 성장을 일구는 것 말고 달리 길이 없다.
문재인 정권이 매달렸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만 훼손했을 뿐 북한에 핵 고도화의 시간만 벌어주었다. 비핵화의 전제를 외면한 채 대화에만 집착한 접근은 끊임없는 도발로 돌아왔다. 북은 온갖 모멸적 언행과 협박도 모자라, 치명적 살상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으로 위기를 고조시키고 곧 7차 핵실험도 감행할 움직임이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최고 자산이다. 이 체제를 더욱 굳히고 국제사회와 공조한 대북 제재로 비핵화를 끌어내는 것 말고 항구적 평화, 국민 삶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지난 정권이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오는 21일 예정된 윤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동맹 차원을 업그레이드하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윤 대통령의 최대 장애물은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국회 의석을 장악한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치지형이다. 야당 협력 없이는 잘못된 법 하나 제대로 바로잡을 수 없어 정상적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계속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서 보듯, 야당은 아직 협조할 뜻이 없어 보인다. 수십 년 승승장구를 자신했던 그들이 겨우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 그 오만과 누적된 실정(失政)으로 국민을 배신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심판에 대한 불복(不服)을 책동하고, 자신들 멋대로의 입법 독재로 치달으면서 민심과 거꾸로 가는 행태다. 야당은 다음 총선까지 적어도 2년은 계속 윤석열 정부를 주저앉히려 애쓸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윤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국민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이 첩첩산중의 위기를 헤쳐나갈 역량을 당장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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