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이재용 부회장, 마지막 날 정의선 회장 면담
중국, 한-미 경제 협력 강화 분위기에 공개적 반발
우리 기업 '한한령 재현' 우려하며 조심스러운 입장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원전 기업 등이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한 우려도 공존한다. 재계 주요 기업이 이를 위한 대응전략 마련에 고심 중이다.
23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정상들과 달리 방한 3일 동안 경제 행보에 집중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원전기술 등 한국의 주요 산업에 관심이 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한미 정상이 ‘세계 최대 반도체공장’서 첫 대면을 점을 봐도 ‘경제안보동맹’에 방점을 찍었다고 봐야 한다”며 “한국 방문 후 첫 메시지로 ‘공급망 문제 해결’에서 한미 양국의 협력 필요성을 역설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입국 직후 윤 대통령과 함께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시설인 삼성 평택캠퍼스를 시찰하며 '반도체 동맹'을 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수행하기도 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면담했다. 정 회장은 2025년까지 미국에 로보틱스,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 분야에 50억 달러(약 6조3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주요 첨단산업 분야에서 민관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첨단반도체와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양자 기술, 바이오 기술, 바이오 제조, 자율 로봇 등에서 민관협력을 강화한다는 데 합의했다.
특히 원전기술 이전과 수출 협력을 심화하는 한편,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 등 우주산업도 공동 논의하기로 했다.
경총 관계자는 “무엇보다 방산산업과 원전, 우주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원천기술 지원을 받게 된다면 국내 관련 기술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재계 주요 기업은 미국 주도 신(新)경제통상 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에 한국이 참여해 중국의 무역보복을 우려했다.
왕윤종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한미)양국 정상의 성명에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으나 중국의 잇따른 강경 발언을 비춰볼 때 적잖은 파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공개적으로 IPEF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22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IPEF를 두고 “(IPEF의) 목적은 중국 포위 시도이며 아태 지역 국가를 미국 패권주의의 앞잡이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이어 “미국은 경제문제를 정치화·무기화, 이데올로기화하면서 경제 수단을 이용해 지역 국가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쪽에 설 것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역의 국가는 미국에 성실한 답변을 요구할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IPEF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어 지난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THAAD) 배치 논란으로 촉발된 ‘한한령’이 재현될 우려도 있다. 한한령 4년여 만에 현대자동차의 중국 내 차량 판매량이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는 등 국내 기업은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한 가운데 우리 기업들은 우려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매우 어려운 시장 중 하나인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지역별 특성에 따라 기업 활동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고 그에 맞춰서 전략을 세울 뿐이다. 업계가 중국 현지 공장, 합작법인 설립 등 투자를 이어왔기에 조심스럽지만 경제 보복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아직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자국 기업이 내수시장을 장악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IPEF의)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라며 “ 아직까지는 정치적인 문제여서 산업계 전반에 파고들지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