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가 베일을 벗었다. 이 영화는 2016년 전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콜센터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25일(현지시각) 오전 11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은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미라마르 극장에서 최초 상영됐다. 정 감독은 2014년에 개봉한 데뷔작 ‘도희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그는 ‘도희야’ 이후 6년 만에 차기작으로 다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다음 소희’는 소희(김시은)라는 여고생이 주인공이다. 소희는 한 대기업의 하청 업체 콜센터에서 직업교육훈련을 시작한다. 영화는 소희가 콜센터 업무를 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여성’, ‘노동’, ‘페미니즘’ 등의 이슈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영화 상영 이후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정 감독은 “한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이 사건을 접하게 됐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는지 너무나 기가 막혔다”며 “영화를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돼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영화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소희가 어떤 감정적 변화를 겪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한 여고생의 정신적 방황과 존재론적 고민을 ‘노동영화’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형상화하고 있다.
동시에 ‘사회고발 영화’로서의 장르적 특징을 지닌 ‘다음 소희’는 사회적 약자가 부조리한 시스템에 의해 어떻게 고통받는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한국영화로는 부지영 감독의 ‘카트’를, 외국영화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연상케 한다.
‘다음 소희’는 지극히 한국적인 내용의 영화다. 하지만 영화 상영 중 눈물을 흘리는 해외 관객들도 많았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외국 관객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오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 아이가 겪는 고통스러운 일을 바라보며 ‘어떤 시스템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을까?’라는 걸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콜센터 업무를 하며 고통 받는 소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2부는 소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유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유진은 ‘도희야’에서 정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배두나가 맡았다. 정 감독은 애초에 유진 역할에 배두나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그는 “배두나는 끝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독보적인 분위기의 배우다. 유진이라는 캐릭터를 충분히 구현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 생각했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