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러시아 대응하는 사이...중국. 인도·태평양 역내 영향력 강화
아베 “미국, 전략적 모호성의 조정을 고려하기 시작” 평가
미국이 중국의 패권 강화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중국과의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기 위해 50년 넘게 유지해왔던 ‘전략적 모호성’의 원칙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데 이어 대중 전략에 있어서 강경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26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조지워싱턴대학에서 45분간 진행한 대중 전략 연설을 통해 중국이 국제질서에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무력으로 국제 질서를 재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중국은 국제 질서를 재편할 의도와 그것을 할 수 있는 경제, 외교, 군사, 기술적인 힘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면서 “중국은 75년간의 세계 진보를 뒷받침해온 보편적 가치관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이 (중국에) 경계를 높여야 한다”고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자국을 발전할 수 있게 한 국제 질서와 법과 원칙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훼손하고 있다며 “자유롭고 포용적인 국제 시스템을 위한 비전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을 바꿀 것”이라고 천명했다.
블링컨의 이날 대중 전략 연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통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FEF)라는 대중 포위망을 만든 후 나온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미국은 지난해 3월 잠정적으로 내놓은 국가안보 전략에서 중국을 ‘유일한 경쟁 상대’로 지목했으나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한 러시아에 대한 대응에 주력해왔다.
그 사이 중국은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존재감 강화에 나섰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바이든 아시아 순방이 끝나자 솔로몬 제도를 비롯한 남태평양 도서국 등을 방문해 이들 국가와의 경제 ·안보 협력 강화에 나섰다.
중국은 이미 지난달 솔로몬제도와 자국 필요에 따라 중국 함정을 솔로몬제도에 파견하고, 현지에서 물류 보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안보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미국과 호주는 해당 안보협정이 중국군의 남태평양 진출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이날 블링컨 연설은 러시아를 넘어 중국의 견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재천명하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지역에 영향력 강화를 시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에 대한 높은 경계감은 50년간 이어온 대만 정책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변화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23일 미·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대만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관여하겠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방송 인터뷰에서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것이란 취지로 답한 바 있다.
미 정부는 대만에 외부 세력이 침입했을 때 군사적으로 개입할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의 조정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4일 인도 매체 위온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 같다“면서 “백악관이 이를 부인했지만, 바이든이 한 말이며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도 최근 미국이 대중 전략에 있어서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대비를 서두르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부상하지 않도록 강한 억지력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