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거주하는 정민희(24·여·가명) 씨는 최근 ‘짧았던’ 공무원시험 준비를 끝냈다. 지금은 공기업·사기업 취업 준비를 병행 중이다. 정 씨는 “실패하더라도 나에게 남는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공무원 시험 준비는 그저 공무원이 되는 것만을 위한 공부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층(15~29세)에게 ‘탈(脫) 공직’은 새로운 트렌드다.
6일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지표’ 자료에 따르면, 국가기관 근무를 원하는 13~34세 청(소)년 비중은 지난해 21.0%로 2019년(13~29세 기준, 2017년 동일) 대비 1.8%포인트(P) 하락했다.
특히 대기업(21.6%), 공기업(21.5%)에 뒤처지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국가기관 선호도는 2017년 25.4%에서 2019년 22.8%, 지난해 21.0%로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구직자들의 직업 선택기준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2019년 직업 선택요인 중 ‘안정성’ 비중이 25.6%였으나, 지난해에는 24.8%로 0.8%P 내렸다. ‘수입’ 비중은 38.7%였다. 직업으로서 공무원의 최대 강점인 ‘정년’이 구직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울산에서 대학 입학을 계기로 상경한 송진호(26·남·가명) 씨도 항만이나 공항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에 관세직 공무원을 준비하려 했으나 사기업 취업으로 진로를 틀었다. 그는 “취업에 실패하면 출구전략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게 됐다”며 “공무원 시험은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볼 수 있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하면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근로조건도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송 씨는 “공무원의 가장 큰 강점이 고용 안정성인데, 공기업과 보수적인 사기업은 고용 안정성도 보장되면서 보수는 더 높다”며 “지금도 사기업에 취업해 보수에 어느 정도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발인원 늘었는데, 지원인원은 감소
현실에서도 공무원시험 지원율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30대 인구 대비 국가직 9급 공무원시험 지원인원 비율(이하 지원율)은 2009년 0.9%에서 2016~2017년 1.6%까지 올랐으나, 올해에는 1.2%까지 하락했다.
공무원 지원인원 비율 추이는 시기마다 그 성격이 다르다. 2009~2012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와 이명박 정부의 ‘작은정부’ 지향에 따라 연간 선발인원이 2000명 안팎에 머물렀다. 공무원시험 합격이 ‘바늘구멍’이 되면서 상당수 공시생이 일반기업 취업으로 진로를 틀었고, 그 결과 지원율은 1.0% 내외를 오갔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부턴 선발인원 회복과 함께 공시생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4910명을 뽑았던 2017년에는 지원율이 1.6%까지 올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2년차인 2018년부터 지원율이 하락 전환했다. 2017년 22만 명을 넘었던 지원인원은 2018년 20만 명대, 2019년 19만 명대, 2020년 18만 명대로 줄었다. 지난해 일시적으로 19만 명대로 늘었으나, 올해에는 다시 16만 명대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20·30대 인구도 줄었으나, 인구 대비 지원율 자체가 1.2%로 하락해 인구 효과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전반적으로 2018년 이후 ‘취업처’로서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 반대로 대기업과 자영업(창업)을 희망하는 청소년은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기현(25·여·가명) 씨는 처음부터 공무원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기업들과 다르게 공무원은 부서나 근무지, 업무를 옮기는 데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돼 답답해 보였다”며 “페이(보수)에 비해 되는 과정이 힘들기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힘들게 붙었는데…박봉, 꼰대문화에 떠나는 공무원들
이직 증가도 경쟁률 하락만큼 큰 문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7년 2635명이었던 의원면직 인원(일반직)은 2018년 3837명, 2019년 4210명, 2020년 4255명으로 매년 증가세다.
개방형 직책은 임용 1년도 안 돼 사직서를 던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민간기업에서 일하던 김민호(35·남·가명) 씨도 2020년 중앙행정기관(정부부처)에 임기제(6급)로 채용됐으나, 이듬해 기관을 나왔다. 그는 “아이디어를 내면 묵살되고, 판단은 무시된다. 희생이 요구되지만, 보상은 없다”며 “그냥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민간기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직급과 급여도 그만둘 이유였다. 이후 지방자치단체 개방형에 다시 지원해 임용됐으나, 또 사직을 고민 중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중앙행정기관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반복됐다.
정부부처들은 대체로 변호사를 6급 또는 공무직, 박사학위 소지자를 7급으로 뽑는다. 전문가들의 몸값이 세후 200만~300만 원인 셈이다. 최근 한 부처는 민간경력 2년 이상 보유자를 전문경력관 ‘나군’, ‘다군’으로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다군은 올해 초임(1호봉, 세전)이 168만6500원이다. 월급으로 환산한 최저임금(191만4440원)에도 못 미친다. 38호봉은 378만5400원으로 7급 24호봉 수준이다. 나군 1호봉은 192만950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1만5060원 많다.
한 부처 과장은 “우리 부에선 변호사들이 공무직인데, 급여를 직급으로 따지면 6~7급 정도밖에 안 된다”며 “얼마 전에는 당연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소송에서 패소했다. 경력을 쌓으려는 신규 변호사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 월급 받고 정부에서 일하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각 부처 ‘에이스’로 꼽히는 행정고시 출신들도 ‘탈 공직’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이직을 위해 취업심사를 신청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831명으로 5년(549명)보다 33.9%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