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실장급, 정년 3~7년 앞두고 퇴직…'전 정권 부역자' 찍혀 한직 전전하기도
53세, 55세….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을 떠난 고위공직자들의 만 나이다.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마지막을 이끌었던 이억원 전 1차관과 안도걸 전 2차관은 정년을 각각 5년, 3년 남겨두고 공직을 떠났다. 1969년생으로 만 53세인 김경선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정년을 무려 7년 남기고 퇴직했다. 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1차관도 1967년생으로 올해 만 55세다.
이처럼 행정고시 출신 고위관료들의 공직수명은 대체로 짧다. 빠른 승진은 곧 빠른 퇴직을 의미한다. 특히 정권교체기엔 장·차관뿐 아니라 실장급(1급)도 물갈이 대상이 된다. 최근 장·차관이 교체된 상당수 중앙행정기관도 실장급 물갈이를 앞두고 있다. 한 중앙행정기관 소속 고위관료는 “고시 출신들에겐 정년이 없다. 몇몇은 ‘7급이 가장 합리적’라고 말한다”며 “요즘엔 공공기관 재취업도 여의치 않아 빨리 승진하면 그만큼 일찍 백수가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더 올라갈 곳 없어’ 퇴직하는 관료들의 뒷모습은 아름답기라도 하다. 일부는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로 ‘전 정권 부역자’로 찍혀 정권 내내 한직을 전전하거나 퇴직 압력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고위관료들이 가장 공감하지 못하는 비판 중 하나는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공직자의 소신은 특정 정치성향과 결부된다. 그 결과는 인사상 불이익이다. 적극행정에 대한 면책도 감사·수사를 막진 못한다. 문재인 정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원전 수사가 대표적인 예다.
가장 비참한 상황은 ‘후배들 승진 막는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퇴직하는 경우다. 인사적체가 심한 기재부에선 종종 고시 출신인 부이사관(3급) 퇴직자가 나오기도 한다.
퇴직 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연금 수급이 개시될 때까지 ‘무소득자’가 된다. ‘엘리트’로 평가받으며 국가에 헌신하던 관료들이 밥벌이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직 중 혜택이 큰 것도 아니다. 사무관(5급)은 초과근로수당이 시간당 1만4000원에 불과하고, 서기관(4급) 이상은 이마저도 없다. 5~10년차 이상 사무관 임금은 대기업 초임 수준이고, 인상률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상황에 ‘공짜 야근’은 일상이다.
이 때문에 고시 출신들에게도 처우에 대한 불만이 존재한다. 한 중앙행정기관 소속 7년차 사무관은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업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보수가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이라며 “의과대학이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동기들도 있다”고 푸념했다. 이어 “예전엔 보수가 적더라도 다른 혜택과 자부심, 권한이 있었지만, 지금은 애국심만 강요된다”며 “과거보다 젊은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무관은 “연차가 쌓이고 책임이 늘수록 ‘이 대우를 받으면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전반적으로 투입 대비 산출이 낮은 직업이라고 느껴진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