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우렁찬 저 소리도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됐다. 장수 프로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하며 방방곡곡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한 방송인 송해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해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도 한마음으로 그의 회복을 기도했던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송해는 올해 들어 이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특별히 앓고 있는 지병은 없지만 고령인 탓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입원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자가격리를 하며 회복에 집중, 코로나를 거뜬히 이겨낸 송해다.
그는 건강해진 모습으로 지난 4월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다시 쥐었지만, 계속되는 건강 악화로 인해 방송 진행이 어렵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후에도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왔으나 이 같은 비보가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송복희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송해는 한국전쟁 때 홀로 사선을 넘어 부산으로 내려왔다. 1955년 ‘창공악극단’으로 데뷔한 후 희극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러 TV, 라디오 채널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던 그가 ‘전국노래자랑’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88년이다. 잠시 하차했다가 1994년 다시 복귀해 지금까지 진행해왔다.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에 이어 5대 진행자로 발탁된 송해는 34년간 매주 일요일마다 시청자들과 만나왔다.
KBS에 따르면 송해가 지난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만난 관객 수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송해는 자신의 인생사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 지난 설연휴 KBS 2TV 에서 방송한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관객수 1000만 명을 언급하자 “현장에 가보면 나무에 올라가서 보는 사람도, 지붕에 올라가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분들까지 합하면 더 많다”고 입담을 뽐내기도 했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을 “운명 같은 프로그램”이라며 자신의 방송 인생을 바쳤다고 이야기한다. 고령이 되어서도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고된 일정을 성실하게 소화해내며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송해의 노력 끝에 ‘전국노래자랑’은 ‘국민 프로그램’으로 불리며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송해가 수십 년간 MC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건 세대를 아우르는 입담이다. 만 3세 꼬마부터 100세가 넘는 고령의 참가자까지, 남녀불문 폭넓은 세대와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로 참가자들을 웃기고 울렸고, 녹화 현장을 매회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노래자랑’은 스타 등용문으로도 불린다. 임영웅, 송가인, 이찬원, 정동원, 김혜연, 박상철 등 트로트 대표 가수들이 ‘전국 노래자랑’에 참가해 송해를 거쳐 스타로 성장했다.
최고령 MC로 국내 방송계에 업적을 남긴 그는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등 수많은 트로피를 품에 안았고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KBS는 지난 1월 송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고령 TV 음악 탤런트 쇼 진행자’ 부문으로 송해의 기네스 세계 기록 등재 추진에 나서기도 했다. KBS와 송해가 기네스에 기록 도전 신청과 함께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기네스의 전문 심사위원단이 검토, 보완 요청 등을 거치는 등 면밀하게 심사한 후에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가 최종 확정됐다. 당시 송해는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덕분”이라고 등재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실향민인 송해는 2003년 평양 모란봉공원 평화정 앞에서 진행된 ‘전국노래자랑’ 특집 방송 무대에를 통해 북녘 땅도 다시 밟았다. 이후 송해의 꿈은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작 고향 재령 땅은 밟지 못한 고인에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고, 송해는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외에도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각종 광고에 출연하고, 드라마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2011년에는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열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12장의 앨범을 냈을 정도로 출중한 노래실력을 자랑했다.
아흔이 넘어서도 현역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남들이 자신의 나이를 물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제 나이는 마흔 여섯”이라고 답했다. 송해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 한 것 없이 그렇게 갔구나 그래서 미안스러움도 많고 죄송스러운 것도 많아서 이제 (제 나이는) 마흔 여섯이라고 한다. 마흔 여섯이면 4자하고 6자하고 꽉 찼기 때문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니까 거기 그냥 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몇 년쯤 더 활동할 거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130살까지 버티기로 시청자들과 약속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해는 서영춘, 곽규석, 배삼룡, 구봉서 씨 등 쟁쟁했던 코미디언들이 주역으로 활약하던 1960~70년대엔 그들에 가려졌던 인물이었다. 평생 2인자에 머물 것 같았던 고인은 특유의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인생 후반부 최고의 방송인 자리에 올랐다. 남녀노소 누구와도 소통을 이뤄낸 송해의 별세 소식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