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테라ㆍ루나 사태의 책임을 거래소에게 전가, 원인에 부합하지 않는 대안을 내놓다 실패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14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당정간담회에서 5대 가상자산 거래소 대표 및 관계자들이 발표한 자율 개선방안은 과거 '암호화폐 거래소 자율규제 실시 계획'을 재조립한 결과다. 13일 각 대표들은 공동협의체를 구성, 가상자산의 거래지원(상장) 개시~종료 단계까지 공통된 평가항목과 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리하겠다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 기술적 효율성 위주 평가에서 가상자산의 프로젝트 사업성 등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코인 프로젝트의 폰지성 사기 여부를 점검하고, 프로젝트의 목표ㆍ사업성ㆍ실현가능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17년 협회 준비위가 발표한 '암호화폐 거래소 자율규제 실시 계획'과 상당 부분 겹친다. 2017년 12월 협회 준비위는 신규코인 상장 프로세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라 거래소가 이를 준용토록 했다. 당시 협회 준비위는 소위 '박상기의 난' 등을 거치며 가상자산 거래소 폐지론이 불거지자 정부합동TF의 권고를 받아 자율규제안을 대안으로 들고 나온 바 있다.
더불어 신규 가상자산 상장 심사시 외부 전문가 참여 비율을 높이겠다고 13일 발표한 내용 또한 협회 자료를 차용했다. 당시 협회 준비위는 '자율규제위원 총 7인 가운데 전체 거래소 회원사 중 대표자 1인만 참여토록 하고 학계,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전문가, 회계·재무·법률전문가 등 외부인사 위주로 구성해 독립성 및 객관성 담보'한다고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숱한 잡음을 낳고 거래소들이 결국 외면했던 과거의 자율규제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협회는 가상자산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지난해 법률자문을 받아 해당 자율규제안을 업데이트, 거래소에 다시 요구하려 했으나 업계 간 이견차로 무산된 바 있다. 이미 업계에서 사문화된 자율규제안을 테라ㆍ루나 사태 대안으로 제시했고, 이를 정치권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정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력이 없는데 누가 영업기밀을 공개하면서 자율규제를 따르겠나"라며 "다른 업권에서도 자율규제의 말로를 살펴보지 않았나"라고 질타했다.
13일 당정 간담회에서 성일종ㆍ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또한 문제의식을 같이하기도 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간담회 이후 이어진 백브리핑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에) 조금 더 조직도 만들고 예산도 투입해서 공동협의체가 제대로 된 자율규제 기구 될 수 있도록 실제적인 힘과 예산과 조직 부여하도록 주문했다"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업계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시각이 5년 전에 정체돼있다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테라ㆍ루나에 대한 투자자들의 민심을 타기 위해, 금융 규제당국은 규제 영향을 확장하기 위해 자율규제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2017~2018년 '바다이야기', '거래소 폐쇄' 이야기를 하던 그 시점에서 내놨던 해법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거래소에도 표준약관, 시세조종 등 문제가 있지만 이번 테라ㆍ루나 가격 폭락은 거래소가 커버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유효한 형태의 규제를 만들어가기보다는 거래소에 대한 규제 인프라를 깔아놔야 겠다는, 포석깔기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