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기업, "임상시험은 R&D 과정의 데스밸리"

입력 2022-06-21 09:01수정 2022-06-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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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10명 중 9명 코로나 백신 개발 필요…임상 참여 의향은 2명 그쳐
환자치료·신약개발 명운 걸린 임상시험, 인식 개선 절실

(연합뉴스)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한 삶을 찾기 위해 의약품 개발은 필수다. 신약개발은 장기간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투입돼 미래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꽃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 다양한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신약개발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신약개발의 성공 여부는 임상시험에 있다. 약의 효과와 안전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핵심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반면 치료제나 백신 개발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제약바이오 업계는 국민의 생명 보호와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개발이 종종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임상시험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와 전문기관의 엄격한 사전 승인절차를 밟아 진행된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임상시험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기니피그처럼 느껴진다’…10명 중 8명 “임상참여 안해”

임상시험이라는 단어는 ‘임상실험’, ‘마루타 알바’, ‘피알바’ 등 잘못된 표현으로 흔히 쓰인다. 일본말로 ‘통나무’라는 의미의 마루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부대가 자행한 인체실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도 임상 ‘시험(trial)’이 아닌 ‘실험(experiment)’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단계에서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을 거쳐 검증하는 것은 임상시험으로 정의된다.

인류 역사상 전 세계적으로 피험자에 대한 인권과 안전 보장을 위한 임상시험 윤리기준은 다양한 형태의 가이드라인 등으로 만들어져 왔다. 임상시험 윤리기준이라 할 수 있는 뉘른베르크 강령(1947년), 헬싱키 선언(1964년), 벨몬트 보고서(1979년),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 임상시험관리기준(1996년) 등이 대표적이다.

(사진제공=대웅제약)

국내에서도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2000년), 한국의사윤리지침(2011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2005년) 등을 통해 피험자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참여자는 임상시험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원하는 경우 언제든지 참여를 중단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임상시험은 반드시 식약처와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승인을 거쳐야 하고, 건강상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하기 위한 보험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국내외 모두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2016년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SKCC)가 일반인 1500여명과 의사 6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이러한 결과가 잘 드러난다.

이 조사에 의하면 임상시험 관련한 우려로 ‘부작용이나 안전성’이 가장 많은 55%를 차지했다. 보험과 본인 부담금에 대한 불확실성(50%), 임상시험 수행 장소의 불편함(48%), 위약(가짜약)을 받을 것에 대한 우려(46%), 아직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에 대한 회의(35%) 등이 뒤를 이었고, ‘기니피그(실험대상)처럼 느껴질 것에 대한 걱정’이라는 응답도 34%였다.

우리나라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지난해 6월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이 실시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대국민 인식 조사’에서 임상시험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인식들이 확인됐다. 총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필요하다는 응답이 92.2%로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8명(78.6%)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임상시험 참여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412명의 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37.9%로 가장 많았고,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32.8%를 차지했다. ‘임상시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는 답변도 16.7%였다.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임상시험 참여를 더디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자체 백신 및 치료제의 개발이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된다.

(사진제공=SK케미칼)

◇임상시험 10%는 참여자 ‘0’…임상 참여자 모집이 신약 개발 최대 난관

실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컸던 지난해 5월, 당시 백신을 개발 중이던 5개 제약사는 임상시험에 필요한 대규모 참여자 모집을 백신 개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A사의 경우 백신 미접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이 어려워져 개발을 중단했고, B사와 C사도 지난해 임상승인을 받았으나 아직도 참여자를 모집 중인 상황이다. 치료제 개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한 제약기업 연구책임자는 “임상시험 참여자에게 수백만원 상당의 참여금액을 지급하는데도 모집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민 10명 중 9명이 백신·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관련 임상시험 참여는 주저한다. 다른 질환의 신약 개발은 이보다 더 임상시험 참여율이나 인식이 낮아 신약개발이 늦어지는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보였다.

실제 임상시험 솔루션 기업 메디데이터가 임상시험 관련 업계 종사자 1030명을 대상으로 2020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의 임상시험 기관들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기존에 진행 중이던 신약개발 연구의 신규 대상자 모집 중지(63%), 가상·원격의료 활용(45%), 임상시험 연기(43%), 대상자 시험기관 방문기간 연장(34%), 임상시험 계획서 수정(33%) 등 차질을 빚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5월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제약사들이 의약품 효능 입증자료를 제출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최근 진행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진행이 더뎌 기간을 기존 30개월에서 추가로 30개월 연장했다. 해당 기업 측은 “2020년초 임상시험을 시작하던 시점에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면서 “(임상시험) 진행이 어려워 2020년 하반기가 돼서야 기관 선정을 했고 심의 이후 2021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희귀질환치료제의 경우 질병 자체가 희귀하고 환자수도 적어 임상시험 참여자를 모집하지 못해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D사는 희귀질환인 혈우병 치료신약 임상 3상을 추진했으나, 신규환자 모집이 어려워 개발을 중단했다. F사도 생후 10년 이내 영유아기에 발생해 이유없이 고열과 발진이 반복되는 희귀질환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 치료제 개발에 나섰으나, 환자를 모집하지 못해 개발을 끝내지 못했다.

미국도 임상시험 참여자 부족으로 중단된 사례가 다수다. 미국 터프츠대 부설 신약개발연구센터가 2017년 150개 임상시험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37%의 임상시험이 참여자를 충분히 모집하지 못했고, 심지어 11%는 단 한 명의 참여자도 모집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임상시험의 80%는 대상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하루 약 800만 달러 규모의 비용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임상시험 참여율이 낮음에도 2019년 기준 임상시험 세계시장 점유율은 3.25%에 달해 세계 7위 수준이었다. 반면 임상시험 참여자 수 기준으로는 1.54%로 세계 20위 수준에 머물렀다.

신약개발을 추진중인 한 제약바이오기업 대표는 “벤처기업의 자금이 바닥나면서 사업을 포기하게 되는 위기 상황을 ‘데스밸리’라고 하는데, 신약개발에 있어 핵심인 환자모집도 해당 신약과 환자들의 명운을 가르는 데스밸리와 다르지 않다”며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개선과 다양한 참여 활성화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신약개발은 무모한 도전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 총괄임원은 “R&D를 촉진해 국민 건강권 확보는 물론 글로벌 신약을 탄생시키려면 임상시험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라면서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 개선은 결국 타이밍이 생명인 의약품 연구개발을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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