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전공의' 지원자 줄고 '전문의'도 감소…업무 가중 따른 악순환으로 대부분 '번아웃' 호소
흉부외과는 심장과 대동맥, 혈관 등 순환기 질환과 폐암·식도암 등의 질환을 담당하는 필수 의료분야입니다. 심장이식과 폐이식, 인공심장, 소아 선천성 심장수술, 에크모 등도 흉부외과 전문의 진료 영역입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김준완(정경호·사진)과 '낭만닥터 김사부'의 부용주(한석규, 극중 일반외과·흉부외과·신경외과 3개 전문의 자격 소유자)가 흉부외과 전문의입니다.
드라마에선 주인공으로 흉부외과 의사가 자주 등장하지만 정작 국내 의료 현장에서는 인기가 빵점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지원 전공의 감소에 따른 인력 부족 문제를 호소하며 정부에 특단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인턴과 레지던트로 불리는 전공의는 수련병원이나 수련기관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일정 기간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크게 줄었고, 전문의 수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이하 학회)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10년 뒤 흉부외과 분야의 국가적 의료공백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며 흉부외과의 인력부족 위기는 국민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김경환 학회 이사장은 “흉부외과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흉부외과 분야 특수성을 기반으로 특별 대책 마련과 실태조사가 시급하다”며 “흉부외과 문제는 우리 의료의 근간에 대한 문제다. 이젠 적극적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10년 후면 우리나라에서 심장수술을 할 의사가 부족해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실제 국내 흉부외과 전공의와 전문의 수는 감소 추세입니다. 최근 2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2020년 21명, 2021년 23명입니다. 일반적으로 매년 의과대학 졸업 인원이 약 3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도 안되는 셈이죠.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도 정원의 50%에 불과합니다. 30여년 전인 1993년만 해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와 배출 전문의는 각 57명이었지만, 20년이 흐른 2012년 흉부외과 전공의는 23명, 배출 전문의는 18명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흉부외과 수련병원의 전공의 보유율은 53.1%로, 1~4년차 전공의가 모두 있는 ‘전통적 수련시스템’이 작동하는 수련병원은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전남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5곳(전체의 7.4%)입니다. 지역간 격차도 문제입니다. 지난해 기준 흉부외과 전공의 약 70%가 서울과 경기에 집중돼 있습니다. 서울이 59명으로 가장 많고, 경기 10명, 대구 8명, 부산 7명, 광주·경남 각 4명, 울산 3명, 충남·제주 각 2명, 인천·강원·대전 각 1명입니다. 경북·전남·전북 지역은 흉부외과 전공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지방과 응급, 특수분야 흉부외과 진료는 의료공백이 현실화됐단 얘기죠. 학회 측은 “응급수술 지연 시 환자가 사망하는 대동맥 박리증 수술은 서울, 경기에 집중돼 있고, 제주와 경북 등 일부 지역 수술 건수는 매우 적어 환자가 이송되지 못해 사망하는 예가 많을 것을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전공의 부족은 전문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흉부외과 전문의 인적구성은 전형적인 역피라미드식 고령화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흉부외과학회에 등록된 전문의 회원은 2022년 현재 1535명으로, 65세 미만 활동 연령 전문의는 1161명입니다. 이 중 707명(60.8%)가 50대 이상이고, 40대는 312명, 30대는 142명입니다. 학회 측은 활동 전문의 1161명 중 37.5%인 436명이 10년 내 정년퇴직을 하고, 현재 추세로 전문의 충원이 10년간 200명 내외라면 현재보다 약 200명 이상의 흉부외과 전문의가 줄어 10년 후 활동 전문의는 1000명 미만이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인원 감소는 전문의들의 업무 가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최근 흉부외과 의료 수요가 늘었지만 전문의는 턱 없이 부족해서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국내 사망원인 1위는 암, 2위는 순환기 질환입니다. 또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시행하는 개심술의 경우 2011년과 비교해 2020년 33.8% 늘었고, 폐암의 대표 수술인 폐엽 절제술도 같은 기간 74.7% 증가했습니다.
이 때문에 번아웃을 겪는 흉부외과 의료진도 많습니다. 학회가 2019년 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 결과, 흉부외과 전문의는 주 5일 기준 평균 63.5시간, 하루 평균 12.7시간을 일하고, 월평균 휴식 없는 당직이 5.1일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흉부외과 전문의 절반 이상(51.7%)이 번 아웃 증상을 호소했고, 번 아웃으로 인해 환자에게도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고 답한 의료진은 거의 다(93.7%)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흉부외과는 필수 의료과임에도 ‘기피과’로 불립니다. 학회 측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 수가와 필수 의료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책 부족, 의료정책 및 제도 부재 등 구조적 문제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이에 2002년 정부와 국회 등에 위기상황을 알리고 국가 차원에서 의료공백을 막아줄 것을 학회 측은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관련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정부도 낮은 수가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해 2009년부터 흉부외과 수가 가산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문제는 효율적이지 못한 제도 운영, 고위험·고난이도의 수술에 대한 현실화된 평가와 보정에 대한 개선 속도가 매우 느려 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는 전공의 지원자 감소, 전문인력 부족, 의료공백 현실화로 이어집니다.
학회 측은 △정부 주도의 획기적인 흉부외과 수가제도 전환 △고난도·고위험 수술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공식 보상제도 △보조인력에 대한 수술수가 산정 △수술 후 중환자 치료에 대한 적극적 보상 △흉부외과 지원금(가산금제도)의 엄격한 감시와 운영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정책 개선 논의를 위해 학회 측은 ‘흉부외과 및 필수의료과 대책위원회’ 설치, 정부가 주도하는 실태 조사, 흉부외과 특별법(가칭) 제정 등 논의 장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정책과 예산을 놓고 줄다리기 하는 사이, 의료 공백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는 늘어가기만 할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