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기저귀 교환대가 여자 화장실에만 설치돼 있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기저귀 교환은 당연히 여자가 하는 거 아니야?”라는 사회적 통념이 박힌 화장실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개념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성별, 연령, 국적,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뜻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최근 출간된 책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레슬리 컨이 저술한 이 책은 도시 계획, 교통, 주택 등의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성차별적 요소가 여성의 삶을 얼마나 무겁게 짓누르는지 파헤친다. 그러면서 컨은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성 편향성을 드러내며 차별 없는 공정한 도시를 디자인하기 위한 제언들을 책에 담았다.
여성들에게 도시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책에 묘사된 것처럼, 여성들은 혹시라도 괴한이 습격할까 봐 열쇠를 손마디 사이에 송곳처럼 끼우고 걷고, 유모차가 인도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왕왕 어깨 밀치기를 당한다. 혹시라도 운전이 미숙하면 “여자 아니야?”라는 혐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컨이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이란 이러한 성차별주의로부터 탈피해 모두를 환대하는 도시 계획에 천착하는 학문이다.
또 다른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제인 다크는 “우리의 도시는 돌, 벽돌, 유리, 콘크리트로 쓴 가부장제”라고 말했다. 이 명제가 진실이라면 현재의 도시는 남자들의 도시인 셈이다. 컨에 따르면 남자들의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계획이 성평등이라는 목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바로 여성 친화적 도시다. 여성 친화적 도시는 여성 중심의 도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도시’다. 컨은 이를 ‘돌봄이 중심인 도시’로 명명한다
컨은 “여성 친화적 도시는 돌봄 중심이 되어야 한다. 돌봄 노동을 계속 여자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돌봄 노동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여성 친화적 도시에 있기 때문”이라며 “여성 친화적 도시는 여자들이 오래전부터 서로를 돕기 위해 사용해 온 창의적 도구를 활용하는 동시에 그것을 도시 세계의 체제에 편입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택 디자인에서부터 대중교통 정책, 동네 설계에 이르는 모든 것에서 이성애자 핵가족을 중심에 놓는 행위를 그만둘 때 비로소 돌봄 중심의 도시가 된다는 게 컨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수용하는 도시가 바로 돌봄 중심의 여성 친화적 도시라는 얘기다.
끝으로 컨은 “도시 계획가들과 건축가들 또한 백인 비장애인 시스젠더(cisgender :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남성을 표준으로 삼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 변주라고 가정해선 안 된다. 이제는 주변과 중심이 뒤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