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년 꿀 생산량은 약 7만2000 톤. 그런데 소비량은 여전히 20만 톤에 달한다.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약 3배가량 많다. 꿀을 수입해왔기에 가능한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가 먹는 꿀의 대부분은 사실 ‘진짜 꿀’이 아니다. 중국 등에서 꿀에 값싼 사탕수수·옥수수 시럽 등을 희석해 ‘가짜 꿀’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가짜 꿀이 수입되면서 미국의 양봉업계는 몰락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에 미국 농부들은 시럽이 들어간 가짜 꿀을 가려낼 수 있는 검사법을 개발해냈다. 그러나 업자들은 가짜 꿀에 꽃가루를 주입하는 등 품질 검사를 통과할 방법을 교묘하게 개발해 시장을 교란시킨다. 결국 소비자는 품질이 낮은 ‘가짜 꿀’을 먹게 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부패의 맛’이다.
꿀벌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도 살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꿀벌을 통해 수분(꽃가루받이)을 하던 꽃과 나무들이 열매를 맺기가 어려워지며 식량 생산에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작물 종의 약 75%가 꿀벌이나 나비와 같은 화분 매개 동물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 작물 생산량의 35%가 꿀벌에 의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무엘 마이어 미국 하버드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은 2015년 국제학술지 ‘랜싯’에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한 해 142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꿀벌 실종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겨울에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면서 월동 중이던 꿀벌이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가 기온이 낮아지며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폐사했다는 것이다. 또 평균기온이 오르면서 꿀벌응애 등의 기생충 등이 더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최근 과학계는 살충제에 주목하고 있다. 담배 성분인 니코틴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이용해 만든 살충제가 꿀벌 신경을 교란시켜 개체 수를 급감시킨다는 것이다. 2017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98개국에서 생산한 꿀 표본 조사 결과 75%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이 검출됐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유럽연합(EU)은 2018년 이 살충제의 사용을 제한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올해부터 사용을 금지했다.
가을에 수확하는 사과와 배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꿀벌 실종 사태가 식탁 물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2008년 국제 환경 단체 ‘어스워치’는 지구에서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될 다섯 가지 생물을 꼽았는데, 꿀벌이 1등을 차지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도 사라지기 때문에 가장 ‘대체 불가능’한 종으로 꼽힌 것이다. 꿀벌은 1초에 200번 날갯짓을 하며 5㎞ 밖까지 날아가 하루 1만 개의 꽃송이를 찾는다. 부지런한 꿀벌이 인간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제 인간이 꿀벌을 살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