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함께 유럽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영화제는 10여년 전만 해도 공식 경쟁부문에 국내 후보작이 오르기만 해도 환호했던 게 우리 현실이었다. 그러나 2019년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면서 세계 영화계에서 K콘텐츠의 저력을 다시한번 뽐냈다.
축구 선수 손흥민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득점왕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에서 최고가 된 손흥민 선수 덕분에 세계 축구팬들의 아시아 축구선수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최근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60년 역사상 최연소로 18세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차지했다. 임윤찬 이전에 조성진, 손열음 등의 피아니스트도 세계 클래식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중문화에 이어 순수 예술 분야에서도 K컬처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이 이렇게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한 경제력 덕분이다.
흔히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경제력, 군사력, 소프트파워를 꼽는다. 이 세가지 파워를 석권하는 나라가 강대국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은 세계 10위 수준이고 군사력도 10위권 안에 든다. 소프트파워에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초청한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한 K팝을 비롯해 앞서 나열한 영화, 스포츠,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한류'로 표현되는 잠재력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소프트파워는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달리 돈만 쏟아붓는다고 하루 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미국과 중국에 못미치는 유럽이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 등 유럽만의 소프트파워를 갖고 있어서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정부는 중국의 대안적 수출 시장으로 유럽을 눈여겨보고 있고, 중국 위상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유럽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측은 "유럽은 전통적으로 설계·소재·장비에 장점이 있고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최근 글로벌 공급망 위기 과정에서 한국이 기술강국이라는 유럽내인식이 커져 우리한테 기회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미국, 중국보다도 큰 EU(유럽연합) 시장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지난해 기준으로 9.9%로, 25%인 중국, 15%인 미국에 훨씬 못미치는 만큼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 시장의 기회를 보고 유럽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도 불거졌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며, 정책 당국자가 '탈중국'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중국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유럽 수출을 늘려야 하니 중국은 덜 중요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경계해야 한다. 전체 수출 파이를 키우기 위해 유럽 시장을 재발견하는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
20년 전 유럽에 거주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럽인들에게 한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진 분단국이라는 이미지뿐이었다. 삼성전자 휴대폰에 관심 있는 유럽인들조차 삼성을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한국은 유럽에 너무나 멀고 낯선 나라였지만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이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이제 더 이상 유럽에서 한국은 먼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유럽 시장을 '재발견'하는 것과 더불어 유럽이 한국을 재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전세계인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소프트파워를 가진 유럽이 K소프트파워를 폭발적으로 키우고 있는 한국을 발견하도록 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경제적인 효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유럽에서 박찬욱이, 손흥민이 단지 '아시아인'으로 뭉뚱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특정돼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한국에 대한 매력도, 한국 상품에 대한 선호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의 전략적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